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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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1)
《평화파괴의 악성종양은 어떻게 산생되였는가》
2024.11.12. 《로동신문》 6면
팔레스티나의 가자지대에서 타오른 무력충돌의 불길이 주변으로 타번지면서 중동이 참혹한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있다.
사태를 우려하는 많은 분석가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대에서 무차별적인 군사행동을 계속 벌리다 못해 레바논과 이란에로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미국의 기준으로 중동질서를 재수립하려고 시도하고있는것이 본질적원인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이스라엘은 명확히 중동평화파괴의 화근이다.
누가 중동에 이스라엘이라는 악성종양이 생겨나게 하였는가.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창건의 전후관계사를 살펴보면 알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팔레스티나지역에는 유태복고주의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유태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 군림하고있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에 아랍인들의 협력을 얻어내려고 수세기동안 오스만제국의 통치하에 있은 팔레스티나를 독립시켜주겠다는 《맥마혼선언》을, 그로부터 2년후인 1917년에는 팔레스티나땅에서의 유태국가창건을 지지한다는 《밸푸어선언》을 발표하였다.
영국의 량면술책은 아랍인들과 유태인들사이의 모순을 격화시켜 류혈충돌을 빚어내였고 영국에 대한 량측의 반감도 고조시키였다.
그때 유태복고주의를 제일 적극적으로 지지해나선것이 미국이였다.
1919년 빠리평화회의에서 미국은 팔레스티나땅에 유태인을 위주로 하는 독립국가를 창건할데 대한 방안을 들고나왔다.그에 이어 미국은 자국에서 살고있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팔레스티나지역에 투자하고 그곳에 기업을 창설하도록 하는 등 유태복고주의운동을 재정적으로 원조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나치스도이췰란드의 유태인말살정책으로 하여 유태국가창설에 대한 국제적인 동정의 여론이 조성된 흐름을 타고 팔레스티나땅에로의 유태인이주를 극구 지원하였다.
1942년 5월 뉴욕에서 미국유태복고주의자대표대회가 진행되였는데 대회에서 채택된 《빌트모어강령》은 영국의 통치를 끝장내고 전체 팔레스티나땅에 유태국가를 세우며 유태인이주와 령토문제에서 완전한 자유를 쟁취할것을 선언하였다.
미국정부는 이 강령에 전적인 지지를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팔레스티나인들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반대하여 완강히 투쟁하였으며 유태복고주의자들은 그들대로 수많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티나에 이주시키였다.
영국과 팔레스티나인들, 유태복고주의자들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것은 당연하였다.
미국은 영국이 진퇴량난의 처지에 빠지게 된것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지역에서 영, 프세력을 밀어내는 동시에 아랍인민들의 반제민족해방투쟁을 탄압말살할것을 획책하였다. 이를 위해 유태복고주의자들을 돌격대로 내세웠다.여기에는 유태복고주의자들의 호전성과 령토야망을 써먹는 동시에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식민지통치수법에 따라 아랍인과 유태인사이의 민족적 및 종교적인 반목을 증폭시켜 저들의 중동지배야망을 손쉽게 실현하려는 흉심이 있었다.
미국지배층과 유태인들사이의 깊은 유착관계도 작용하였다.
당시 수백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유태인들은 금융, 무역, 보건 등 여러 부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었으며 유태인단체들은 미국의 국회선거와 대통령선거전에서 후보자들이 반드시 쟁취하지 않으면 안될 영향력있는 대상이였다.
영국은 미국의 강경정책과 37억 5 000만US$의 《전후부흥원조》에 굴복하여 팔레스티나문제를 유엔에 넘기였으며 미국은 1947년 11월 유엔총회 제2차회의에서 팔레스티나를 분할하여 두개의 국가를 세울데 대한 결의를 통과시키였다.
아랍인들은 이를 완강히 반대하였으나 유태인들은 환성을 올렸다.
1948년 5월 14일 영국군이 팔레스티나에서 철수함으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는 종말을 고하였다.
그날 유태복고주의전국위원회는 유태민족회의를 열고 유태국가 이스라엘의 창건을 선포하였다.
그로부터 불과 몇분만에 미국은 이스라엘국가를 승인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렇게 되여 중동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악성종양-이스라엘이 산생되였다.
본사기자 장철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2)
《멸망에 직면하였던 주구를 구원한 흉심》
2024.11.13. 《로동신문》 6면
이스라엘이 국가수립을 선포한 때로부터 8일이 지난 1948년 5월 22일 오후였다.
미국이 긴급히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한건의 결의안을 들이밀었다.
그 결의안은 《팔레스티나사태가 유엔헌장 제39조에 명시된 평화의 파괴원천이 되고있다.》고 성명할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그 결의안에는 또한 《전쟁을 중지하고 확고한 질서를 보장》할것을 관계정부당국들에 명령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당시 중동에서는 새로운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있었다.
팔레스티나땅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생겨나자마자 지역에서는 마치 유기체내에 이물이 생기면 면역계통이 발동되는것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였다.
그것이 바로 제1차 중동전쟁이였다.
이스라엘이 국가수립을 선언한 다음날인 1948년 5월 15일 여러 아랍나라가 저들에게 장차 큰 위협으로 될수 있는 이물이 더 성장하기 전에 미리 수술해버릴 목적으로 항쟁에 분연히 떨쳐나섰다.에짚트, 수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이 군사행동에 돌입하였고 예멘,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아랍나라들의 무력은 이스라엘을 동, 남, 북 3개 방향에서 공격하였다.
호상 협동하면서 이스라엘군을 각개격파할것을 계획한 이 나라들의 무력은 이스라엘의 방어선들을 돌파하여 목표로 삼은 지역들을 빠른 속도로 점령하였다.
남부전선에서 에짚트군은 꾸드스의 남쪽교외에까지 진출하면서 전과를 확대하였다.
이스라엘군은 전 전선에 걸쳐 붕괴직전에 처하게 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누구보다 당황망조해한것은 바로 미국이였다.유태인들을 저들의 앞잡이로 길들이고 국가를 창건하도록 숱한 품을 들인것이 물거품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미국이 《노력》한것들중에는 1945년 9월 대통령 트루맨이 직접 나서서 《나치즘으로부터 박해를 당하여 전쟁의 화를 입었던 유럽의 유태인》 10만명을 하루속히 팔레스티나에 이주시키자고 영국을 구슬려 실현시킨 일도 있었다.그렇게 함으로써 유태복고주의자들을 저들의 충실한 주구로 써먹을것을 꾀하였던것이다.
트루맨의 《제의》를 계기로 미국과 유태복고주의자들사이의 결탁이 확정지어졌다.
저들이 실행해온 계책이 풍지박산나는것을 막아야 하겠다고 타산한 미국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정화결의안을 제출하였던것이다.
1948년 5월 29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는 4주간에 걸치는 정화를 실시할데 대한 결의를 채택하였다.그리하여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간에는 6월 11일부터 7월 8일까지 불안정한 정화가 이루어지게 되였다.
정화 4주간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숨돌릴 틈을 얻고 재무장을 할수 있는 황금시간으로 되였다.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에 따르면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지원이 전반적으로 금지되여야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 결의를 아예 무시하고 정화기간 이스라엘에 비행기, 땅크를 비롯하여 숱한 신형무기와 막대한 군수물자를 보장해주었다.
또한 《질서유지》라는 명목밑에 영국군이 철수한 하이파항에 수백명의 미군무력을 투입하였으며 팔레스티나지역의 연안에 군함까지 대기시키고 아랍나라들을 무력으로 위협하면서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를 비호두둔해주었다.
미국의 뒤를 이어 서방나라들도 많은 무기와 군수물자를 대주면서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준비를 도와주었다.
4주간에 걸쳐 전쟁준비를 충분히 갖춘 이스라엘은 아랍나라들을 공격하면서 여러 지역을 강점하였다.
그러나 전선형편은 다시금 이스라엘에 불리해졌다.미국은 즉시 유엔안전보장리사회를 발동하여 제2차 정화를 실시하게 하였다.
이 기간 무력을 재증강한 이스라엘은 10월 15일 일방적으로 정화를 파괴하고 아랍나라들에 대한 제2차 공격을 감행하면서 약 6 700㎢에 달하는 팔레스티나땅을 강점하였다.
이스라엘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해줌으로써 미국은 그를 하수인으로 더욱 철저히 그러쥐고 중동지배의 돌격대로 써먹을수 있게 되였다.
중동평화의 악성종양을 시초에 제거하려던 아랍나라들의 계획은 실패하였다.
본사기자 리경수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3)
《수에즈전쟁을 극구 부추긴 막후조종자》
2024.11.15. 《로동신문》 6면
1950년대에 들어와 중동에서 반제자주의 기운이 높아가는 속에 에짚트에서도 영국의 괴뢰였던 파르크왕조가 무너졌다.1953년 6월에는 에짚트공화국이 선포되였다.
에짚트는 영국과 맺었던 불평등조약을 페기하고 수에즈운하에서 영국군대를 철수시켰다.경제발전을 목적으로 건설하던 아스완언제건설에 대한 미국의 《원조》가 중지되자 1956년 7월 중요한 전략적의의를 가지는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포하였다.
그러자 제국주의자들은 에짚트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에짚트정부가 취한 수에즈운하의 국유화조치에 대해 《에짚트의 독단행위이며 운하항행의 자유에 위협을 준다.》라고 중상하면서 자국은행에 예금되여있던 에짚트의 자금을 동결시켰다.그리고 수에즈운하에서 일하던 영국인배길안내원들을 전부 철수시킴으로써 운하운영에 혼란을 조성시켰다.
프랑스도 성명을 발표하여 자국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다할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미국은 에짚트의 수에즈운하국유화선포로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된 영국과 프랑스의 불만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저들의 중동지배전략실현에 악용하였다.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는 관계국들에 중대한 영향을 줄것이다.》라고 떠벌이면서 자국내의 에짚트인자산 4억US$를 동결시켰는가 하면 영국, 프랑스와 《3개국회의》를 소집하고 공동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였다.성명에서 3개국은 1888년의 이스딴불조약에 의하여 담보된 운하의 운영제도를 확립한다는 구실밑에 국제회의를 소집할것을 제의하였다.목적은 수에즈운하를 《국제관리》라는 미명밑에 저들이 타고앉으려는데 있었다.이에 따라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런던에서는 22개국이 참가한 회의가 진행되였다.여기에서 미국은 운하를 《유엔과 련결된 국제위원회에 넘겨 관리》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그 제안이 여러 나라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자 미, 영, 프는 9월 또다시 18개국이 참가한 런던회의를 소집하고 《수에즈운하사용국협회》라는것을 조작하려고 하였다.그것 역시 에짚트의 완강한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수에즈운하를 《국제관리》밑에 두려던 음모가 파탄되게 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부추겨 에짚트에 대한 대대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게 하였다.
1955년에 에짚트정부가 수에즈운하와 주변해협에서 이스라엘선박의 항행을 금지시킨데 대한 보복의 기회를 노리고있던 이스라엘은 1956년 10월 29일 에짚트를 불의에 침공하였다.31일에는 영국, 프랑스가 이스라엘-에짚트분쟁에 간섭해나섰다.
이렇게 되여 제2차 중동전쟁, 일명 수에즈전쟁이 발발하게 되였다.
이 전쟁이 일어나도록 극구 부추기고 침략자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제공한 배후조종자가 바로 미국이였다.
중동지배전략실현을 위해 아랍나라들을 포함하는 《중동사령부》,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하는 《중동방위기구》(메토)를 조작하려다가 실패한 미국은 아랍나라들을 분렬약화시키며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에짚트에 대한 영국, 프랑스의 강도적인 침공을 극구 부추기는 동시에 에짚트령토인 시나이반도에 대한 이스라엘의 팽창주의적야망에 불을 달았다.
당시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중동에 대한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할데 대한 제안을 거부하였다.한편으로는 어용출판물들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에짚트에 대한 무력침공의 《도덕적권리를 가지고있다.》라는 강도적인 론리를 들고나왔다.
또한 미국은 이 나라들에 당시로서는 현대적인것으로 손꼽히던 땅크와 미싸일을 적재한 전투기, 각종 포를 비롯한 전쟁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넘겨주었다.공개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국은 프랑스에 36억US$분의 무기를, 영국에는 전투기를 위주로 하여 12억US$분에 해당한 무기를 원조하였다.
미국의 막대한 후원에도 불구하고 에짚트의 완강한 반침략투쟁과 국제적고립으로 전쟁을 계속할수 없게 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침략자들은 1956년 11월 7일 전투행동을 정지한다는것을 선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로써 제2차 중동전쟁은 막을 내리였다.
제2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중동에서 영, 프세력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미국은 자기의 지배권을 강화하게 되였다.
본사기자 김수진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4)
《제3차 중동전쟁의 불씨로 된 요르단강개발계획》
2024.11.19. 《로동신문》 6면
제2차 중동전쟁이 끝난지 10여일이 지난 1956년 11월 24일 유엔총회 제11차회의에서는 사회주의나라들이 주동이 되여 제기한 결의안을 가결하였다.채택된 결의에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에짚트에서 군대를 즉시 철수시킬데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국제적압력에 못이겨 영국과 프랑스는 한달만에 저들의 무력을 전부 철수시켰다.
이스라엘군이 각종 구실을 대며 점령지에서 철수하려 하지 않자 1957년 2월 2일 유엔총회는 이스라엘군의 즉시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를 또다시 채택하였다.할수없이 이스라엘은 1957년 2월 시나이반도에서, 그해 3월 가자지대에서 철수하면서 그대신 수에즈운하를 자유롭게 통과할수 있는 담보를 받았다.하지만 아랍나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는 끊기지 않고 계속되였다.자료에 의하면 1958년부터 1964년 6월까지 이스라엘이 아랍나라들의 령공, 령해, 령토를 침범한 사건은 무려 1만 9 717건에 달하였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1962년에 이스라엘은 요르단강물줄기를 제멋대로 변경시킴으로써 아랍나라들의 리익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침략적인 요르단강개발계획에 따른것이였다.
중동에 《대유태제국》을 세울 망상밑에 1959년부터 요르단강개발계획을 세운 이스라엘은 요르단강상류의 물을 네게브사막으로 끌어들여 그곳을 개간하고 400만명의 유태인들을 여기에 정착시키려고 획책하였다.
요르단강은 레바논과 수리아의 남부지방에서 발원하여 팔레스티나북부의 튀베리야호를 거쳐 사해로 흘러드는 강으로서 수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등을 통과하는 중요한 국제하천이다.
이스라엘의 요르단강개발공사는 이 강물을 리용하는 아랍나라들의 생명선을 끊어놓는 날강도적행위로서 지역나라들의 강력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원래 이스라엘은 1953년에 아랍나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요르단강개발에 착수하여 수리아와의 비무장지대에 물길을 파고 네게브사막으로 요르단강물을 끌어올리는 놀음을 벌려놓았었다.그러나 수리아가 이 문제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제소하고 기구가 이스라엘에 요르단강개발공사를 중지할것을 요구하여 공사는 중지되였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끝끝내 요르단강개발계획의 간판을 뻐젓이 걸고 요르단강물줄기를 저들에게로 돌리는 건설을 벌려놓았다.
1964년 1월 에짚트대통령 나쎄르의 발기에 의하여 까히라에서는 제1차 아랍수뇌자회의가 진행되였다.
여기에서는 튀베리야호에서 요르단강물줄기를 돌려 강물이 이스라엘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물길변경계획이 작성되였다.
회의에서는 이스라엘의 요르단강개발계획을 규탄하는 성명이 발표되였다.
아랍나라들은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유태복고주의자들의 팽창주의정책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그 방법은 더 많은 침략세력을 인입하여 아랍국가들의 안전과 진보 및 세계평화에 대한 더 많은 침략적중심을 설치하는데 있다.》
요르단강개발을 둘러싸고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사이의 대립이 첨예화되자 1964년 2월 5일 미국대통령 죤슨은 뉴욕에서 한 연설에서 《원자력을 리용하여 바다물을 담수로 만들기 위한 회담이 현재 자국과 이스라엘사이에 진행되고있다.》느니, 《물은 사람들을 분렬시킬수 없으며 사람들을 단결시켜야 하며 전쟁의 요인으로 되여서는 안된다.》느니 하고 횡설수설하였다.
수리아신문 《알 바아스》는 죤슨의 발언이 요르단강의 물길을 변경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책동을 지지해나선것이라고 규탄해나섰다.
아랍나라들이 미국의 책동에 반발해나섰다.
미국은 이스라엘국가가 생겨난 때부터 해마다 약 38억US$에 달하는 막대한 원조를 주어 유태복고주의자들을 무장시켰다고 한다.
미국의 전적인 지지비호밑에 이스라엘은 1964년 11월에 수리아를 폭격하였다.요르단강개발문제를 둘러싸고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의 대결은 점점 더 격화되였다.결국 그 대결이 제3차 중동전쟁에로 이어졌다.
본사기자 박진향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5)
《6일전쟁은 아랍나라들에 무엇을 남겼는가》
2024.11.20. 《로동신문》 6면
1967년 6월 5일 8시경부터 18시까지 거의 10시간에 걸쳐 이스라엘은 300여대의 비행기들을 련속적으로 출격시키면서 에짚트와 수리아, 이라크와 요르단의 비행장과 항공기지들을 무차별적으로 타격하였다.단 하루사이에 에짚트는 비행사의 95%와 반항공미싸일중대의 대부분을 잃었다.다른 중동나라들에서도 많은 비행장과 비행기들이 파괴되였다.
제3차 중동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전쟁개시 첫날에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스라엘은 지상부대를 출동시켜 3일만에 가자지대를 점령하고 수에즈운하에로 진출하였으며 시나이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하였다.10일 저녁에는 골란고원의 대부분과 디마스끄로 통하는 간선도로들을 통제권안에 넣었다.
이것으로 전쟁은 일단 막을 내렸다.
이 전쟁을 일명 6일전쟁 또는 6월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아랍나라들은 이스라엘에 변변히 대항해보지도 못하고 넓은 지역을 빼앗기는 참혹한 손실을 당하였다.
원인은 아랍나라들이 이스라엘의 기만술책에 녹아난데 있었다.
이스라엘은 2개월전부터 전쟁준비를 다그쳤다.미국으로부터 400대이상의 신형땅크와 250대이상의 비행기를 반입하는 등 전쟁장비를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 예비병력도 28만명이나 확보하였다.에짚트침공계획도 빈틈없이 세워놓았다.
작전의 불의성을 위해 이스라엘은 일대 기만극을 펼치였다.
이스라엘공군은 1965년부터 지중해상공에서 비행훈련을 같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반복하였다.초기 에짚트군 반항공전파탐지초소들은 이스라엘비행기들이 지중해로 진출하기만 하면 즉시에 그 행적을 공중경보망으로 통보하군 하였다.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감에 따라 점차 만성화되였다.하여 전쟁이 일어날 당시 에짚트군 반항공전파탐지초소들은 이스라엘공군의 출격에 대해 상부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 에짚트와의 관계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인상을 조성하는 동시에 에짚트가 저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아부재기를 치면서 여러 나라가 에짚트에 압력을 가하도록 하였다.여기에 합세해나선것이 미국이다.중동전쟁발발을 불과 며칠 앞둔 1967년 5월 29일 미국무성관리가 에짚트를 행각하여 《외교적교섭이 계속되는한 이스라엘이 공격하지 않을것》이라는 담보를 주었다.
에짚트는 중재자의 탈을 쓴 미국의 기만극에 넘어가 이스라엘을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담보까지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사촉자, 배후조종자였다.전쟁 전 기간 리비아의 미군기지와 지중해의 미항공모함전단은 이스라엘과 접촉을 유지하면서 에짚트군의 정보를 수집하여 넘겨주고 에짚트의 전파탐지망에 장애를 조성하였다.이것은 중동나라들의 촉각을 마비시킨 중요한 요인이였다.
당시 이스라엘이 강탈한 령토가운데는 수리아의 골란고원도 있다.
골란고원은 팔레스티나, 요르단, 레바논과 국경을 접한 전략적요충지이다.특히 이곳을 장악하면 장거리포로도 능히 수리아의 수도 디마스끄를 타격할수 있다.
그런것으로 하여 이스라엘은 오래동안 골란고원에 눈독을 들여왔으며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이곳을 장악하고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철군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수십년간 군사적강점을 지속하면서 유태인정착촌과 군사기지를 부단히 확대하였다.이스라엘은 1981년에 골란고원에 관한 법을 채택하여 이 지역을 일방적으로 저들의 령토에 병합시켰다.
미국은 골란고원에서의 이스라엘의 유태인정착촌확장책동과 군사연습을 적극 비호두둔하였으며 2019년 3월에는 유엔결의들을 무시하고 이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놀음까지 벌려놓았다.이것이 오늘도 중동의 불씨로 이글거리고있는 골란고원문제이다.
제3차 중동전쟁은 아랍나라들에 심각한 교훈을 새겨주었다.
침략자가 평화의 북통을 요란히 두드리는만큼 전쟁의 시각은 박두하며 원쑤와의 대결에서는 단 한순간의 해이가 그 무엇으로도 만회할수 없는 참혹한 후과를 몰아온다는것, 그리고 미국은 결코 《평화의 사도》가 아니라 침략의 원흉이라는것이다.
본사기자 은정철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6)
《끈질기게 감행하는 유태인정착촌확장책동》
2024.11.21. 《로동신문》 6면
2010년 2월 18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이스라엘의 유태인정착촌건설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제출되였다.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거부권행사로 끝내 채택되지 못하였다.
결의안은 아랍나라들이 작성한것으로서 요르단강서안지역과 동부꾸드스에서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유태인정착촌건설책동을 규탄하고 이스라엘이 강점한 팔레스티나령토에서 이러한 행위를 당장 중지할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결의채택을 가로막은 후 유엔주재 미국대표는 《유엔은 유태인정착촌건설문제를 토의하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느니,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것은 이스라엘의 정착촌건설을 지지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느니 하며 뻔뻔스럽게 책임을 회피하려고 수선을 떨었다.
이스라엘의 침략행위와 살인만행, 유태인정착촌확장책동을 묵인조장하고 적극 비호하는 미국의 이런 행위는 처음이 아니였다.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이후 강점한 지역들에서 아랍인들을 강제로 내쫓고 유태인들을 이주시켜 비법적인 거주지역들과 군사시설들을 설치할 때마다 미국은 눈뜬 소경, 귀달린 벙어리처럼 놀아댔다.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결의안들이 제출되면 거부권을 휘두르며 그 채택을 가로막아나섰다.
미국을 방패막이로 삼은 이스라엘은 로골적으로 유태인정착촌건설을 강행하여왔다.
1967년 6월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의 가자지대와 시나이반도, 동부꾸드스지역을 포함한 요르단강서안지역, 수리아의 전략적요충지인 골란지역을 점령하였다.전쟁과정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랍령토의 총넓이는 6만여㎢에 달하였다.
이스라엘의 정착촌건설놀음은 중동지역에 《대유태제국》을 세우려는 유태복고주의자들의 령토팽창야망의 산물이다.
이스라엘침략자들은 정착촌건설에 항거하는 아랍인들을 닥치는대로 체포, 추방, 학살하였으며 아랍인마을에 불도젤과 땅크를 내몰아 그들의 생활터전을 깔아뭉개였다.또한 아랍인들의 토지, 과수원, 수원지 등을 강제로 몰수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아랍령토에 대한 이스라엘침략자들의 강점책동으로 하여 1967년부터 1970년대말까지 근 50만명의 팔레스티나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던 고향에서 쫓겨났다.요르단강서안지역에서 살던 아랍인들의 수는 32%나 줄어들었으며 골란지역에는 겨우 8%의 아랍인들만이 남았다.또한 이스라엘이 《농업용》이니, 《군사용》이니 하는 구실을 대고 강제로 빼앗은 아랍인들의 땅만 해도 수백㎢에 달하였다.
정착촌들이 건설된 지역들은 땅이 비옥하다.기후가 비교적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으며 바람이 세지 않아 알곡, 남새, 과일이 잘된다.
시나이반도남쪽지역에는 많은 량의 원유가 매장되여있는데 유전이 개발되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이스라엘의 원유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강점한 요르단강서안지역, 골란지역 등은 수리아, 레바논 등을 비롯한 아랍나라들을 침략하기 위한 군사적교두보라고 할수 있다.
실지 이스라엘은 그곳들에서 주변나라들과 무장충돌행위를 자주 감행하군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스라엘이 강점한 아랍땅을 《유태화》하며 그곳을 거점으로 중동나라들에 대한 침략을 계속 강행하여 령토팽창야망을 기어이 실현해보려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팔레스티나를 비롯한 아랍나라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항의, 국제사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1993년 9월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사이에 《팔레스티나인자치에 관한 원칙선언》(오슬로협정)이 체결되였다.이 협정에는 이스라엘군을 가자지대와 예리코시에서 4개월내에 철수시키며 팔레스티나인들에게 제한된 자치권을 부여할데 대한 내용이 명시되여있다.또한 2년안으로 지역의 포괄적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여 5년안으로 그 해결을 실현할것을 예견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5년에야 가자지대에서 무력철수놀음을 벌려놓았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정착촌확장책동으로 하여 중동정세는 항시적으로 복잡하고 긴장한 상태에 놓여있다.
본사기자 박진향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7)
《10월전쟁이 새겨주는 교훈》
2024.11.26. 《로동신문》 6면
제3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새로운 전쟁준비를 다그치면서 군사비를 무려 4배로 확대하였다.
1973년에 들어와 미국과 이스라엘은 중동정세를 극도로 첨예화시켰다.6월중순에는 이스라엘침략자들이 수리아-레바논국경에 약 10만명의 무력을 집결시키고 무장도발을 끊임없이 일으키였다.10월 6일 이스라엘침략자들은 에짚트와 수리아에 대한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에짚트와 수리아는 과감한 군사적반격으로 이스라엘의 군사적도발책동을 단호히 분쇄하기로 합의하였다.에짚트와 수리아는 련합무장부대를 조직하고 통일적인 작전계획을 세웠으며 맹렬한 포화를 들씌우는것으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싸움에 떨쳐나섰다.
이렇게 되여 일명 10월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였다.
전쟁은 에짚트쪽의 시나이전선과 수리아쪽의 골란전선에서 진행되였다.
시나이전선에서는 에짚트, 알제리, 뜌니지 등의 군대들이, 골란전선에서는 수리아, 이라크, 마로끄 등의 군대들이 이스라엘군을 공격하였다.에짚트무력은 이스라엘이 다년간 품들여 《난공불락의 요새》로 구축해놓은 방어선을 순식간에 돌파하였으며 수에즈운하동쪽의 땅을 되찾았다.이와 동시에 수리아군도 전면적인 공격을 단행하여 골란지역의 일부를 되찾았다.
이스라엘은 전쟁개시후 3일동안에만도 1967년 전쟁기간에 입은것보다 더 큰 손실을 당하였다.수천명의 군대와 수백대의 비행기, 땅크를 잃었으며 주요진지들을 내놓지 않으면 안되였다.
전쟁형세가 기울어지자 미국은 《SR-71》정찰기로 촬영한 전쟁상황에 대한 사진정찰자료들을 이스라엘군에 제공하는 한편 지중해에 있던 4척의 핵잠수함과 여러척의 항공모함 및 상륙분함대를 포함하여 근 50척에 달하는 군함들로 이스라엘의 해상전투행동을 지원하였다.
미국의 지원밑에 이스라엘은 재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10월 11일 전 전선에서 반공격으로 이행하였다.이스라엘군은 에짚트군진지를 돌파하고 수에즈운하를 넘어 수도 까히라를 위협하였으며 동시에 수리아의 디마스끄도 포사격의 사정거리안에 두게 되였다.
10월 25일 교전쌍방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결의를 접수하고 정화를 선포하였다.
다음해 1월 이스라엘은 에짚트와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할데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수에즈운하서쪽과 동쪽의 부분적인 점령지역에서 철수하였다.같은 해 5월 수리아와도 류사한 협정을 맺고 점령하였던 령토와 제3차 중동전쟁으로 차지하였던 골란지역의 일부를 내놓았다.
10월전쟁은 단결하여 싸우면 승리한다는 진리와 함께 제국주의자들의 교활한 량면술책에 추호의 환상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새겨주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아랍나라들은 군사적공동작전을 진행하는 동시에 석유수출을 금지하는것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제국주의나라들에 집단적보복을 가하였다.예상치 않았던 석유위기에 직면한 영국, 프랑스, 이딸리아, 에스빠냐는 미국의 수송기가 자기 나라의 령공을 통과하여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중수송하는것을 거부하였다.
아랍나라들의 단결의 위력앞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1975년 이스라엘과 에짚트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여 량측간에 완충지대가 설정되고 적대적인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1979년 3월 미국의 중재밑에 에짚트와 이스라엘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였다.
그러나 이 평화의 장막뒤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무력증강과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각종 전투기들의 납입량을 늘이였으며 1975년말에는 현대적인 추격기들로 이루어진 첫 비행대를 창설하였다.이외에 숱한 무장장비들을 구입하여 항공 및 반항공분야에서 아랍나라들에 비한 결정적인 우세를 차지하게 되였다.
본사기자 장철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8)
《레바논전쟁을 부추긴 간특한 속심》
2024.11.28. 《로동신문》 6면
제4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침략의 예봉을 레바논에로 돌리였다.
당시 팔레스티나해방조직 중앙위원회가 레바논의 수도 바이루트에 자리잡고있었다.팔레스티나해방조직 무장력은 레바논남부에 거점을 두고 반이스라엘투쟁을 계속 벌려나갔다.
1978년 3월 이스라엘인들이 탄 뻐스가 텔 아비브부근에서 전복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소행으로 몰아붙인 이스라엘은 그에 대한 《보복》을 운운하며 레바논에 침입하였다.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레바논남부에 《안전지대》를 창설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스라엘은 보다 큰 전면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기회만을 노리였다.바로 그러한 때인 1982년 6월 3일 영국주재 이스라엘대사가 런던에서 3명의 아랍인들에 의해 저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이스라엘은 그것을 무작정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소행이라고 고집하면서 레바논남부에 있는 팔레스티나항쟁세력기지들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과 포격을 감행하였다.팔레스티나해방조직 무장력이 이에 대한 보복타격을 가하자 이스라엘침략자들은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6일 레바논남부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작전을 시작하였다.이로써 레바논전쟁이 발발하였다.
레바논전쟁은 공방전을 거듭하다가 8월에 팔레스티나해방조직과 이스라엘사이의 정화합의가 이룩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였다.
사실상 레바논침략전쟁은 이스라엘을 내몰아 아랍나라들을 각개격파하여 중동지역을 제 손아귀에 거머쥐려는 미제의 일관한 지배전략에 따른것이다.미제는 이 전략을 수행하는데서 팔레스티나항쟁운동을 주되는 장애물로 보고 이를 소멸하도록 이스라엘을 부추기고 뒤받침해주었다.
미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침략을 사전에 모의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침략행위를 확대하도록 조건을 조성해주었다.이스라엘국방상을 워싱톤에 불러들여 침략계획을 구체적으로 모의하였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곧 지중해수역에 항공모함을 집결시키고 레바논과 팔레스티나인민들을 위협하였다.
미제는 전쟁초시기에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레바논으로부터의 이스라엘침략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으며 침략자들에 의하여 서부바이루트가 봉쇄되고 여러날째 생활용수와 전기, 식료품공급이 단절되여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있을 때 유엔에 제출된 서부바이루트봉쇄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반대해나섰다.뿐만아니라 미제는 이스라엘침략자들에게 각종 살륙무기들을 넘겨주었으며 지어 투항할것을 팔레스티나해방조직에 요구하면서 이스라엘군을 서부바이루트에 투입시키겠다고 한두번만 위협하지 않았다.
9월 이스라엘침략자들이 서부바이루트에 들어가 두개의 팔레스티나피난민수용소를 포위하고있을 때 미국의 중동특사 드레이퍼는 이스라엘수상 베긴과 마주앉아 밀담을 벌렸다.같은 날 미국무성은 성명을 발표하여 미국은 서부바이루트로부터 이스라엘의 철수에 관한 《각본을 내보일 생각이 없다.》고 함으로써 이스라엘침략자들이 마음놓고 레바논의 수도에 틀고앉아 소름끼치는 만행을 감행하도록 허용하였다.
바이루트에서 대학살만행이 감행되고 전세계가 격분에 넘쳐 이스라엘을 단죄하며 징벌할것을 요구하고있을 때 미국대통령 레간은 방송연설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속죄할수 있게 하는 《징벌》이란 없다고 하면서 하수인을 두둔해나섰다.
레바논전쟁은 팔레스티나를 비롯한 아랍나라들에 커다란 불행과 재난을 들씌웠다.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만명의 평화적주민들이 희생되고 수십만명의 인민들이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게 되였다.팔레스티나해방조직 성원들은 투쟁무대를 다른 아랍나라에로 옮기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이스라엘침략자들의 무분별한 령토팽창야욕과 미제의 교활한 간섭책동으로 하여 민족적자주권과 령토를 되찾으려는 팔레스티나인민들의 투쟁은 가슴아픈 실패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본사기자 김수진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9)
《꾸드스는 어떻게 병합되였는가》
2024.11.29. 《로동신문》 6면
꾸드스는 예로부터 아랍인들의 도시로서 이슬람교성지로 알려져있다.이 도시에는 아랍인들의 슬기를 보여주는 고대, 중세시기의 유적과 유물들이 많다.
이스라엘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때 꾸드스의 서부지역을 강점하고 이곳에 국회와 정부기관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1967년 제3차 중동전쟁때에는 꾸드스의 동부지역마저 강점하였다.이어 동부꾸드스에서 문화유적들을 마구 파괴하면서 수많은 아랍인들을 강제추방하고 정착촌을 건설하는데 달라붙었다.
동부꾸드스를 병합하고 꾸드스의 지위를 변경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책동이 로골화되는것과 관련하여 1980년 6월에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7월에는 유엔총회 긴급특별회의가 소집되였다.유엔총회 긴급특별회의는 7월 30일 112개 성원국의 찬성밑에 동부꾸드스를 포함하여 강점한 모든 아랍땅에서 이스라엘이 무조건 철수할것과 팔레스티나독립국가의 창건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결의는 이스라엘이 1980년 11월 15일전으로 철수를 시작할것을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엔총회 결의가 채택된 바로 그 다음날에 동부꾸드스를 이스라엘에 병합하며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영구적이며 불가분리의 수도》로 선포하는 부당한 법을 국회에서 채택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법채택놀음을 통해 동부꾸드스뿐 아니라 1967년에 강점한 아랍나라들의 땅을 영원히 집어삼키려는 강도적인 야망을 드러내놓았다.
이스라엘의 이 행위는 아랍나라들은 물론 사회주의나라들과 쁠럭불가담나라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 세계평화애호인민들로부터 강력한 규탄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아랍나라들은 이스라엘의 강도적인 행위에 격분을 표시하면서 《꾸드스를 되찾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싸울》 각오를 다지였다.또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나라와는 외교 및 경제관계를 단절하기로 하였으며 꾸드스에 대사관을 두고있는 나라들이 대사관을 텔 아비브로 옮기도록 요구하였다.그에 따라 여러 나라가 꾸드스로부터 대사관을 철수하였다.
세계가 물끓듯하는 속에 1980년 8월 20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는 꾸드스를 수도로 규정한 이스라엘의 《기본법》을 무효로 선언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군사적지원을 주고 아랍나라들에 대한 침략을 극구 부추기면서도 꾸드스를 저들의 합법적인 수도로 만들려는 하수인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호두둔하는것만은 삼가하였다.그것은 비교적 단합되여있은 아랍나라들과 사회주의나라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한 규탄과 항의, 그로 인해 초래될 국제적고립과 경제적파국을 감당하기 힘들었던것과 관련된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며 꾸드스를 수도로 선포하려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로골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2001년 3월 7일 당시 미국무장관 포웰은 미국회에서 한 증언에서 꾸드스는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하면서 대통령 부쉬가 이스라엘주재 미국대사관을 텔 아비브로부터 꾸드스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하여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중동나라들과 아랍국가련맹 등 여러 기구와 국제사회가 이를 강력히 규탄하자 미국은 《꾸드스문제에서 미국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사실해명》을 하는 놀음을 벌렸다.하지만 그 다음해에 미국회는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데 대한 법을 채택하고 부쉬가 이에 수표하여 법효력을 발생시켰다.
그후 10여년이 지나 미국은 또다시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포하였다.그리고 미국대사관을 텔 아비브로부터 꾸드스로 옮기였다.
미국의 비호와 지지밑에 감행된 이스라엘의 꾸드스병합은 힘이 약하면 자기 땅도, 인민의 안녕도 지켜낼수 없다는 교훈을 국제사회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박진향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10)
《골란지역의 강도적인 병합과 그 배후》
2024.12.2. 《로동신문》 6면
골란지역은 수리아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시기 이스라엘에 의해 강점당하였다.당시 이스라엘은 골란지역의 면적 1 860㎢가운데서 약 1 260㎢를 무력으로 차지하였다.
이스라엘이 강점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약 13만 3 000명의 수리아인들이 살고있었다.
골란지역은 군사적으로 볼 때 팔레스티나, 레바논 등과 국경을 접한 전략적요충지이다.이곳에서는 장거리포를 가지고도 능히 수리아의 수도 디마스끄를 타격할수 있다.그로부터 이스라엘침략자들은 골란지역에서 살던 수많은 수리아인들을 내쫓고 28개소에 유태인정착촌을 건설하였다.한편 이곳에 침략무력을 집결시켜놓고 대규모군사연습을 때없이 감행하면서 지역나라들의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였다.
이스라엘의 군사적도발과 침략책동으로 하여 이 지역에서는 전쟁발발의 위험이 날로 커갔으며 그것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규탄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나라들의 요구에 의해 이 문제는 유엔무대에서 취급되였다.
1974년 5월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 제338호에 의하여 이스라엘은 수리아와 골란지역에 대한 병력분리협정에 조인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이 협정에 따라 1 300명의 유엔병력감시군이 골란지역의 수리아와 이스라엘진지들사이의 비무장지대를 감시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골란지역을 영구강점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1980년 7월 30일 꾸드스를 병합하여 저들의 수도로 정한다는 법을 채택한 후 이스라엘은 골란지역을 영구강점하려는 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기 시작하였다.
1981년 3월 이스라엘의 극우익정당출신 국회의원 코헨이 골란지역을 병합할데 대한 법안을 제출하였다.하지만 당시 이스라엘국회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다.꾸드스의 병합문제로 가뜩이나 고조되여있는 국제사회의 분노와 항의가 더욱 세차게 끓어번지는것이 두려웠기때문이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총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수상 베긴은 《적당한 시기에 병합할 방침》이라고 하면서 골란지역을 완전히 저들의 령역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실행에 뻐젓이 달라붙었다.
이스라엘은 1981년 12월 국회에서 수리아의 골란지역에 저들의 법과 재판권, 행정권을 적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다음 골란지역을 병합한다는것을 결정하였다.이로써 이스라엘은 《대유태국가건설》의 간판을 든 날강도적인 령토팽창주의자, 중동의 매우 위험한 침략자로서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놓았다.
이스라엘의 골란지역병합행위는 중동에서 전쟁위험이 보다 증대되고 령토강탈을 노린 침략행위가 더욱 로골화될수 있다는것을 시사해주었다.
골란지역의 병합을 선포한 후 이스라엘은 그곳에 장갑차, 비행기 등 전쟁장비와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였다.
전체 아랍나라들과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망동을 규탄배격하였다.
아랍나라들은 수리아의 골란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병합책동을 규탄하며 이스라엘에 제재조치를 취할것을 호소하는 결의안을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제출하였다.결의안에는 강점된 수리아의 골란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취한 조치들은 침략행위로 된다고 규탄하고 각국 정부들이 이스라엘의 병합을 무효로 하기 위하여 《구체적이며 효과적인 조치들을 취할것》과 《모든 분야에서 이스라엘에 그 어떤 성원도 원조도 주지 말며 이스라엘과 협조하지 말것》 등을 호소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의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행사로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채택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이 골란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하였을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과 체결한 《전략적인 협조에 관한 협정》의 효력을 정지시킨다고 떠들면서 《분개》를 표시하였었다.하지만 그것이 세계여론을 기만하기 위한 한갖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을 스스로 드러내놓았다.
당시 어느한 아랍나라 정부는 성명에서 미국의 무제한한 지원이 없이는 이스라엘침략자들이 수리아의 골란지역에 대한 병합결정을 내릴수 없다고 규탄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미국이 해마다 이스라엘에 주는 군사경제적원조는 30억US$에 달하였다.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무장하고 령토팽창에 미쳐날뛰고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감행한 골란지역에 대한 강제적병합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는것을 폭로해주고있다.
본사기자 박진향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11)
《두번째 레바논전쟁을 일으킨 흉심은 어디에 있었는가》
2024.12.6. 《로동신문》 6면
2006년 7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에 대한 군사적침공을 확대하면서 레바논에 대규모적인 공습을 가하였다.
레바논의 애국력량조직인 히즈볼라흐는 이에 무력으로 강력히 대응하였다.
이로써 레바논에서 또다시 격렬한 무장충돌이 일어났다.
1982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무장세력을 소탕한다고 하면서 감행한 레바논전쟁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것을 제2차 레바논전쟁이라고도 하였다.
이스라엘은 히즈볼라흐의 거점인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레바논의 전 령토를 공격하였으며 다리와 도로, 발전소, 학교, 사원 등을 닥치는대로 파괴하였다.
30여일간에 걸치는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군사적공격으로 어린이들과 부녀자, 늙은이들을 포함하여 레바논의 민간인 1 287명이 죽고 4 054명이 부상당하였다.총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00만명이상이 피난민으로 전락되였다.지어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국제적으로 사용금지된 송이폭탄까지 넘겨받아 무고한 레바논인들의 머리우에 마구 퍼부었다.
이스라엘의 이 반인륜적인 망동은 국제사회의 광범한 규탄을 불러일으켰으나 오직 미국만이 이스라엘을 극구 비호하였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비난하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결의안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으로 국제사회의 정화요구를 일축하였으며 이스라엘에 지하목표를 타격하는데 사용할 레이자유도폭탄을 비롯한 각종 살인무기들을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을 막후에서 조종하고 부추긴 미국의 범죄적정체와 음흉한 속심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국잡지 《뉴요커》가 폭로한데 의하면 레바논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미국은 이스라엘측과 전쟁각본을 짜놓고있었다고 한다.
히즈볼라흐의 대응을 유도하여 전쟁을 도발하고 그 책임을 히즈볼라흐에 넘겨씌우며 레바논정부와 히즈볼라흐사이에 대립을 조장시켜 이 세력을 국제적으로 고립약화시킨다는것이 각본의 골자였다.
당시 유럽의 한 신문은 《워싱톤이 원하지 않고 미국의 비호와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이 그토록 엄청난 군사행동을 하지 못했을것이다.워싱톤은 올해(2006년) 봄 미국을 방문한 이스라엘관리들과 히즈볼라흐에 대한 공격계획을 토의하였으며 5월에 이를 최종승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미국이 왜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을 부추기였는가.
2005년 3월 레바논에서는 반정부파인물이였던 이전 수상 하리리에 대한 암살사건을 계기로 《잣나무혁명》이라는 《색갈혁명》이 일어났다.
반정부세력은 그를 구실로 소요를 일으키고 정부를 사임에로 몰아갔다.막후조종자는 다름아닌 미국이였다.
미국의 기도는 두주일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사임하였던 정부는 복귀되였다.
미국의 사촉밑에 일어난 《잣나무혁명》에 강력한 반기를 든것은 히즈볼라흐였다.
《잣나무혁명》의 실패는 미국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로부터 미국은 히즈볼라흐를 두고서는 레바논자체를 틀어쥘수 없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그뿐 아니라 히즈볼라흐가 있는한 저들이 장차 이란에 군사적압박이나 공격을 가하는 경우 심대한 배후타격을 면치 못한다는것을 인식하게 되였다.
당시 미국무장관은 레바논전쟁을 《새 중동의 탄생을 알리는 진통》으로 묘사하면서 미국이 바라는 정화는 단순히 쌍방사이의 자제나 공격중지가 아니라 히즈볼라흐의 완전한 무장해제라고 공언하였다.
외신들은 미국의 속심은 반미세력인 히즈볼라흐를 약화시키는 한편 레바논정부에 친미바람을 더욱 불어넣어 레바논남부에서 통치권을 행사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는데 있다고 평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레바논전쟁은 미국이 중동전략실현의 길안내자, 하수인인 이스라엘을 추동하여 벌린 히즈볼라흐를 제거하기 위한 대리전쟁, 반이란시험전쟁이였다.
미국의 이러한 기도는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규탄과 레바논항쟁세력의 강력한 저항과 보복공격으로 실현될수 없었다.
8월의 정화실시에 이어 10월 1일 이스라엘이 레바논남부로부터 무력을 철수시킴으로써 전쟁은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로 막을 내리였다.
본사기자 장철
(끝)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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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등대고 그토록 오만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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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누구를 등대고 그토록 오만한가》
2024.11.16. 《로동신문》 6면
얼마전 이스라엘수상 네타냐후가 내각회의에서 지난 9월 레바논과 수리아의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휴대용무선호출기폭발사건이 저들의 소행이라고 공개하였다.자기가 휴대용무선호출기와 관련한 작전을 진행하려고 하였는데 일부 관리들이 《미국이 반대할것》이라고 하면서 만류하였다는것, 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고 작전을 강행하였다는것이다.
지금 세계각지에서 테로사건이 매일같이 일어나고있다.많은 경우 주범들은 자기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사리분별을 잃은 광신적인 테로분자들이나 단체들만이 저들의 행동임을 보란듯이 공개한다.
집권자라는 인물이 세계를 경악케 한 국가테로사건을 저들의 소행이라고 공개하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그만큼 네타냐후는 애당초 죄의식이라는것이 전혀 없는 상습적인 테로범, 희세의 랭혈한이다.
이스라엘자체가 국가테로로 생존해온 나라이다.
가자사태가 발생한이래 무고한 팔레스티나인들을 4만 3 500여명이나 학살하고 10만 2 00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고도 저들의 군사작전과정에 사실상 민간인사상자가 난것은 없다고 떠벌이는 파렴치한이니 《불과 수천명이 피해를 입은》 휴대용무선호출기폭발사건같은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나오고있는것이다.
최근 새로 취임한 이스라엘국방상은 《이란의 침략을 저지시키고 그의 능력을 소멸》하고 《하마스의 가자지대통치를 종식》시키며 《히즈볼라흐를 소멸》하는것이 저들의 주요목표라고 내뱉았다.수상이나 국방상이나 한바리에 실어도 짝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누구를 믿고 이토록 오만한가.그에 대해 재삼 까밝힌다면 이스라엘이 믿는것은 미국이고 그의 변함없는 후원이다.
부언하건대 중동지역에서의 폭력의 악순환은 바로 미국이 몰아온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동지역에 산생시켜놓은 악성종양이다.침략과 살륙, 테로 등 자기와 꼭같은 유전자를 가지고있는 이스라엘을 미국이 어떻게 대해주겠는가는 불보듯 명백하다.
지난해 10월 가자사태가 터지자마자 미국은 이스라엘의 대응에 그 어떤 붉은 선도 설정하지 않았다고 공언하였다.
국제적으로 정화를 실현하고 전쟁을 종식시킬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있지만 미국만이 이스라엘을 정치군사적으로 끊임없이 후원하고있다.네타냐후를 미국회연단에 올려세워 열성껏 격려까지 하였다.지어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대에서 팔레스티나인들을 살해하는것을 대학살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떠벌였다.
미국은 피에 주려 발광하는 살인마에게 각종 중무기와 탄약을 비롯한 많은 군수물자를 아직까지도 제공하고있다.그중에는 두꺼운 콩크리트도 산산쪼각낸다는 근 1t짜리 《MK-84》폭탄과 《헬파이어》정밀유도공대지미싸일, 지하관통폭탄도 있다.
이스라엘은 상전이 막대한 자금을 풀어 련속적으로 넘겨주는 폭탄과 미싸일들을 가자지대에 마구 퍼부어 세계를 경악케 하는 사태를 빚어냈다.
친미, 친이스라엘적인 서방나라 정객들까지도 가자지대의 인명피해상황과 인도주의형세가 이미 《용인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시인하면서 이스라엘의 야만적행위를 비난하는 판인데 유독 미국만이 하수인을 비호두둔하는데 여념이 없다.전쟁을 비롯한 각종 무력충돌을 돈벌이공간으로 삼고 세계곳곳에서 빚어지는 참사들에서 《번영》의 기회를 찾는데 이골이 튼 세계최대의 전쟁상인인데다가 이스라엘을 앞잡이로 내세워 중동지역을 영원히 틀어쥐겠다는 정책도 변함없으니 결과는 명백한것이다.
특등전쟁상인 미국의 흉악한 마수를 끊어버려야 가자지대에서의 류혈참극뿐 아니라 세계를 불안케 하는 각종 무력충돌의 발발을 멈출수 있다.
허영민
[누구를 등대고 그토록 오만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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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6일
[인류의 평화지향에 또다시 도전한 악의 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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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2월 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인류의 평화지향에 또다시 도전한 악의 제국》
2024.12.3. 《로동신문》 6면
얼마전 팔레스티나의 가자지대에서 무조건적인 정화를 실현하며 민간인들에 대한 기초적인 봉사와 인도주의원조를 즉시 제공할것을 요구하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표결에서 미국이 또다시 반대표를 던졌다.지난해 10월 가자사태가 발생한 이후 벌써 6번째로 되는 미국의 단독거부권행사이다.이로써 《인권옹호자》, 《인권표본국》으로 자처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천인공노할 반인륜적인 대량학살만행을 극구 비호두둔하고있는 미국의 파렴치성과 이중기준적행태가 다시금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가자지대정화와 관련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은 13개월이상이나 지속되고있는 무력충돌로 하여 4만명이 훨씬 넘는 민간인사망자와 전례없는 인도주의재난이 초래되고있는 엄중한 상황을 놓고 10개의 비상임리사국들이 수주일동안의 진지한 협상을 거쳐 작성제출한것이였다고 한다.시급한 정화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강렬한 지향을 반영한것이였다.
그러나 미국은 거부권을 휘둘러 유엔안전보장리사회와 국제사회의 정화노력을 또다시 침체상태에 빠뜨리였으며 이스라엘의 반인륜적인 집단학살만행에 푸른등을 켜주었다.
이 엄청난 악행을 놓고 따지지 않을수 없다.
미국은 이번의 정화결의안에 인질석방과 관련한 조항이 없다고 앙탈을 부리였는데 결의안에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정화와 함께 모든 인질들의 즉시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한다고 명백히 지적되여있다.
팔레스티나이슬람교항쟁운동(하마스)의 테로공격이 현 사태를 빚어냈다고 하는것도 궤변이다.
국제사회는 가자사태의 근원이 한 당사자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자기의 땅에 국가를 세울 권리조차 거부당하고 다른 당사자는 남의 땅에 자기의 국기를 꽂고 수차례의 전쟁과 살륙으로 령지를 넓혀온 오랜 력사적부정의에 있다고 평하고있다.
이외에도 미국은 가자지대에 대한 인도주의원조제공이니, 인도주의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것이라느니 하는따위의 시시껄렁한 소리들을 늘어놓았는데 하나같이 속검은 횡설수설뿐이여서 구태여 론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미국의 행위는 명백히 국제법도 안중에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편들기이며 안전보장리사회에서의 거부권을 도용하는 오만한 인권유린, 이중기준의 극치이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거부권은 대량살륙과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막기 위해 안전보장리사회 상임리사국들에 부여된 권리이다.
그러나 미국은 랭전시기에는 물론 랭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저들의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거부권을 마구 람용하여 세계평화와 안전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를 강점한 때로부터 80년을 가까이하는 오늘까지도 중동에서 전쟁범죄와 대량살륙의 류혈이 멎지 않는것은 미국의 이 오만한 태도가 빚어낸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가자사태가 발생한 이후만 놓고보아도 미국이 지난해 첫 거부권을 행사하였을 때에는 약 3 000명의 팔레스티나민간인이 사망하였고 두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시점에서는 1만 7 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올해 2월 세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하였을 때 근 3만명의 사망자와 약 7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4월 다섯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하였을 때에는 사망자수가 3만 4 000여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번 여섯번째 거부권행사의 시점에서는 팔레스티나인사망자수가 4만 4 056명, 부상자수는 10만 4 268명으로 늘어났다.
이 끔찍한 사상자수는 《인권옹호자》니, 《인권표본국》이니 하고 자처하는 미국이 인권은커녕 오히려 극악한 대량살륙만행을 옹호하는 희세의 인권유린국, 유태복고주의자들에게 방대한 각종 살인무기들을 쥐여주어 대학살과 파괴에로 끊임없이 내모는 평화의 원쑤, 인류의 적이라는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미국의 거듭되는 악행을 보며 국제사회가 분노로 끓고있다.
정화가 문제해결의 첫걸음인데 국제법이 이스라엘에는 다르게 적용되는가.수만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이 아직도 부족한가.얼마나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야 하겠는가.
이스라엘에 의해 지난 1년간 제2차 세계대전과 윁남전쟁에서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살해되고 력사상 가장 많은 320여명의 인도주의활동가들이 사망하였으며 1 000여명의 의료성원들이 죽었다.《인권옹호》, 《언론의 자유》를 운운하는 미국이 어째서 이에 대해 침묵하는가.
비발치는 이 절규는 미국이야말로 팔레스티나인민들의 생존과 희망, 인류의 정의와 량심을 유린하는 악의 제국이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장철
[인류의 평화지향에 또다시 도전한 악의 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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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2월 3일
[내걸자마자 깨여져나가는 《정화》의 간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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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2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내걸자마자 깨여져나가는 《정화》의 간판》
2024.12.5. 《로동신문》 6면
레바논애국력량조직인 히즈볼라흐와 이스라엘사이에 정화합의가 이룩되였다.
합의조항들에는 이스라엘군이 60일안에 레바논남부지역에서 철수하며 동시에 히즈볼라흐도 전투원들을 리타니강북쪽으로 이동시킬데 대한 내용이 반영되여있다.정화합의는 현지시간으로 11월 27일 4시부터 정식 발효되였다.
그로써 레바논에로 확대되여가던 무력충돌사태를 정지시킬수 있는 제도적장치가 마련되였다.
정화합의가 발효된 즉시 레바논정부는 이스라엘에 강점한 남부지역에서의 철수를 시작할것을 요구하면서 해당 지역에 군대와 안전군을 비롯한 무력을 증강배비하여 국가의 안전을 수호할 립장을 천명하였다.
국제사회는 정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민간인들의 안전이 보장될수 있게 되였다고 안도감을 표시하고있으며 정화합의가 철저히 준수되기를 기대하고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화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레바논에 대한 군사적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정화합의가 발효된 다음날 아침 이스라엘군이 레바논남부지역의 한 마을에 있던 승용차를 목표로 무인기공격을 감행한것이다.
이스라엘은 차를 탄 여러명의 《수상한자》가 마을에 들어와 정화합의를 위반하였다, 그에 대응하여 차주변에 경고사격만을 가하였다고 하면서 저들의 군사행동을 정당화하려들었다.그러나 그것은 정화합의위반범죄를 가리우기 위한 날강도적궤변에 불과하였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이스라엘측이 《인명피해를 피하기 위한 경고사격》으로 묘사한 무인기공격으로 하여 적어도 레바논인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것은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같은 날 이스라엘측은 《테로활동을 포착한데 따라 위협을 해소》한다는 간판밑에 레바논남부지역에 공습을 가하였다.다음날에는 히즈볼라흐의 중거리미싸일발사대를 타격한다고 하면서 또다시 이 지역에 대한 공중타격을 감행하였다.현재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군의 일방적인 군사행동만이 계속되고있다.
이스라엘군은 정화합의가 발효된 후 성명이라는데서 《우리는 레바논남부지역에 의연 남아있으며 정화합의위반행위를 단호히 억제할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정화합의위반행위에 대한 억제행동》이라는 이스라엘측의 론거는 그야말로 생억지이다.말하자면 레바논인들의 활동은 《정화합의위반행위》이고 저들의 군사적침략은 그에 대한 《억제행동》이라는것이다.
레바논인들은 어디까지나 레바논남부지역의 주인들이고 침략자는 이스라엘이다.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침략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장치가 바로 정화합의인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침략자들은 《정화합의위반에 대한 억제》를 방편으로 내들고 레바논에 대한 저들의 침략행위를 계속하고있다.결국 레바논남부지역에서 정화합의는 레바논인들의 손발을 얽어매고 이스라엘의 군사적침략행위에 합법성을 부여해주는 역작용을 놀고있는셈이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정화합의채택에 응해나서기는 하였지만 그들에게는 군사행동을 중지할 의향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정화》의 간판밑에서 일방적인 침략책동에 발광적으로 매여달리고있다.
현 사태는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파괴자, 암적존재로서의 이스라엘의 범죄적정체를 국제사회에 다시한번 뚜렷이 각인시키고있다.
본사기자 은정철
[내걸자마자 깨여져나가는 《정화》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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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푸어선언 - 세계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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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세계상식
《밸푸어선언》
2024.11.14. 《로동신문》 6면
1917년 11월 2일 영국외무상 밸푸어는 당시 유태복고주의운동지도자 로스챠일드에게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악명높은 《밸푸어선언》이다.
밸푸어는 편지에서 영국정부가 팔레스티나땅에 유태인들의 《민족의 집》(유태민족국가를 의미함.)을 세우는데 동의하며 그 실현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밸푸어선언》은 당시 영국정부와 유태복고주의자들이 팔레스티나문제에서 서로 리용하고 《협조》한 산물이였다.
영국에 의거하여 팔레스티나땅에 발을 붙이려는 유태복고주의자들의 기도는 중동지역에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는 영국의 요구와 일치하였다.1882년 에짚트를 강점한 영국은 지중해동남부지역의 전략적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팔레스티나와 지중해의 아랍연안나라들을 저들의 지반으로 만들려고 하였다.그리하여 영국은 팔레스티나의 유태세력을 《벗》으로 보고 인디아로 통하는 극히 중요한 통로인 수에즈운하를 지중해동쪽해안의 완충지대로 간주하였다.
영국은 《밸푸어선언》을 리행하기 위하여 1922년에 요르단강을 계선으로 대요르단을 둘로 갈라 서쪽은 팔레스티나, 동쪽은 외요르단으로 하였다.《밸푸어선언》의 발표로 유태인들은 팔레스티나에 국가를 세우기 위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게 되였다.
한때 이스라엘외무상으로 있었던 아바 에반스는 《유태사》라는 책에서 만일 《밸푸어선언》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스라엘이 없었을것이라고 썼다.
본사기자
[밸푸어선언 - 세계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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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4일
[유태복고주의 - 세계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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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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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복고주의》
2024.11.16. 《로동신문》 6면
유태복고주의는 유태인들이 이른바 《잃은 땅을 회복》한다는 구호밑에 유태국가를 다시 세우려는 반동적인 사상이다.
팔레스티나땅에 돌아가 유태국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사상은 이미 17세기초부터 나온바 있으나 정치적조류로서의 유태복고주의는 19세기말에 형성되였다고 할수 있다.
19세기중엽이래 유럽나라들에서의 자본주의발전과 더불어 유태인들속에서 대규모적인 근대기업을 창설하여 《유태민족중심》을 형성하려는 야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한편 유럽자본주의렬강들은 유태인들의 복고주의적감정을 부추겨 아랍인들과 유태인들사이의 반목과 불화를 조성함으로써 저들의 중동침략정책을 손쉽게 실현하려 하였다.
유태복고주의는 이것을 배경으로 대두하게 되였다.
1897년 3월 스위스의 바젤에서 열린 유태복고주의자들의 제1차대회에서는 《팔레스티나에 유태인들을 위하여 법적으로 보호되는 피난처를 창설》하는것을 유태복고주의의 공식목적으로 선포하였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세계유태복고주의조직이 조작되였다.
유태복고주의는 변형된 부르죠아민족주의와 사회배외주의 및 기타 반동사상을 포함하고있다.
그 기본교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유태인들은 《조상들의 땅》(팔레스티나와 그에 린접한 지역)에 집결하여 《순수 유태적이고 평등한 국가》를 세울 《력사적권리》를 가지고있다는것이다.
19세기말이후 유태복고주의자들은 영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티나에 대대적으로 기여들어 팔레스티나인들과의 끊임없는 충돌과 마찰을 일으켰으며 1948년 5월 미국의 부추김밑에 팔레스티나의 일부 지역에 이스라엘국가를 조작하였다.
유태복고주의는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국가사상으로 되였으며 그것은 전세계유태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이스라엘에로의 집결, 유태복고주의정신으로의 무장, 《대이스라엘국가》의 건설을 주되는 목적으로 하고있다.
유태복고주의를 일명 시온주의(시오니즘)라고도 한다.시온이란 꾸드스(이스라엘명 예루살렘)의 작은 산언덕이름이다.
유태복고주의가 《시온산에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내들고있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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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부츠 - 세계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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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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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부츠》
2024.11.21. 《로동신문》 6면
키부츠는 이스라엘이 강점한 아랍지역들에 건설한 유태인들의 반군사화된 정착촌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이 정착촌에 수십세대 또는 수백세대를 망라시켜 반군사화와 요새화가 실현된 집단농장, 집단촌으로 꾸려놓았다.여기에서는 모든 유태인들이 공동로동을 할뿐 아니라 어린이들까지도 집단적으로 키우게 되여있다.
정착촌의 거주자들은 반군사조직에 가입하여 매일과 같이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또한 이스라엘인모두가 항상 무기를 소지하고있으며 외출할 때에는 총을 휴대하고 다닌다고 한다.정착촌주위에는 철조망을 치고 이스라엘군병사들이 지키고있다.
이스라엘의 력사를 보면 20세기전반기에 키부츠운동이라는것이 있었다.
아랍인민들의 날로 강화되는 독립투쟁을 견제하려는 영국의 술책에 따라 1919년부터 1923년사이에 중동지역에서는 유태인들의 제3차 이민운동이 벌어졌다.이 운동을 키부츠운동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전쟁이후 강점한 아랍땅에서의 정착촌건설을 《유태인복지정책》의 기둥으로 내세웠으며 《유태인들을 이주시키면 이 땅도 이스라엘의것이 된다.》라는 강도적인 구호를 내걸고 정착촌건설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그리고 이 정착촌을 《키부츠》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정부는 강점지역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에 대하여 특별보조금을 주고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우대조치를 실시하여왔다.이를 통해 더 많은 유태인들을 정착촌에 끌어들이고있다.나할이라고 부르는 정착촌도 있다.이곳을 군인촌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착촌들은 말뿐이지 실지로는 해당 지역에 대한 강점의 영구화와 중동침략을 위한 이스라엘의 군사적거점들이다.
본사기자
[키부츠 - 세계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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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21일
붙임)
지금 상황이
그 얼마나 엄중한지가
몸서리치게 느껴지지않습니까. 그렇다면,
스스로가 거짓 반공세뇌 우민화 공작에 걸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못하는 정신불구자 얼빠진 망탕머저리 바보가 되어있음이 명명백백하게 증명되는 것입니다.
조선전쟁(6.25)을 되돌아봅시다.
인민대중(민중)이,
적아(敵我)를 가려보지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정세를 직시.인식하지못하고,
멍하면,
전쟁참화는 현실로 됩니다.
우리 모두 얼차리고
적아(敵我)를 또렷이 직시.인식 합시다.
있는 그대로의 절박한 정세(현실)를 직시.인식 합시다.
우리 스스로와 사랑하는 후세대를 위하여 !
사람(人) 민족 조국을 위하여 !!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공보실장 담화
[연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에서 하신 기념연설》 김정은 주체113(2024)년 11월 21일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담화
[연설] 《조성된 정세와 공화국무력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들의 임무에 대하여》 조선인민군 제4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공보문]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임대표부 공보문
[담화] 적대세력들의 가증되는 군사적위협은 우리 핵무력강화로선의 정당성을 완벽하게 립증할뿐이다 -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백서] 우리 국가에 대한 중대주권침해행위는 최악의 통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윤석열패당의 발악적흉책의 산물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적연구원 백서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성명] 적대세력들의 군사적위협을 억제하고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노력을 더욱 증대시켜나갈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성명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지도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신형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19》형시험발사 성공적으로 단행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대한민국발 무인기에 의한 엄중한 주권침해도발사건의 최종조사결과 발표
[담화] 미국은 조선반도정세를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떠민데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외정책실장 담화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김정규 로씨야담당 부상 최근 여론화되고있는 대로씨야파병설과 관련한 립장 발표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김선경 국제기구담당 부상 담화
[담화] 불법무도한 대조선제재책동에 가담한 나라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선희 외무상 담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전략미싸일기지들을 시찰하시였다
[발표] 대한민국이 감행한 반공화국중대주권침해도발의 진상이 밝혀졌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발표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안전성 대변인발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선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하시였다
[보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부국경 동,서부지역에서 대한민국과 련결된 도로와 철길 완전페쇄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담화] 무모한 도전객기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것이다 -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발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국경선부근의 포병련합부대들과 중요임무수행부대들에 사격준비태세를 갖출데 대한 지시를 하달한데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발표
[담화] 한국군부는 중대주권침해도발의 주범 또는 공범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것이다 -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중대성명] 주권사수,안전수호의 방아쇠는 주저없이 당겨질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중대성명
붙임)
전쟁!
핵/생/화학 전쟁!!
살아남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핵/생/화학 전쟁!!
자나깨나
북침전쟁 기회를 노리며
늘상
미친듯이 벌려놓는
북침전쟁 연습과
북침전쟁 도발과
그에 따른 전쟁공포 속에서 살다보니,
전쟁!!
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있습니다.
철천지원수 미제침략자의 목표는
애초
북침전쟁 입니다.
전쟁!!
분단고착화 미군강점유지책략 무기장사... 따위는 허울이고 부수적인것이고 수단(방편) 입니다.
따라서,
감각이 무디어졌든말든 전쟁은 그냥 전쟁 입니다.
더구나
이 전쟁은
1차 2차 세계대전이나 조선전쟁(6.25)과는 다릅니다.
이 전쟁은
세계 판가리 전쟁 입니다.
총포탄은
핵/세균/독가스는
그 누구도
알아보지도 않고
피해가지도 않습니다
핵/생/화학 전쟁 앞에서
그 무엇이 중요하며, 그 무엇이 쓸모있습니까.
지금
당장
전쟁이 터져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생사존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멍하니 앉아서 무리죽임을 당하느냐
아니면
모두가 하나같이 떨쳐나서 전쟁미치광이놈들을 때려잡고 전쟁을 막느냐.
쥐구멍인지 하수도구멍인지 바퀴벌레처럼 모여앉아서
종이장 들고 사진찍고 본질없는 헛소리나 나불거리는
유치원 아이 놀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얼 차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얼 차립시다.
지금은
행동으로 떨쳐나서야할 때 입니다.
너나 할것없이
한사람같이 떨쳐나섭시다.
전쟁미치광이놈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잡읍시다 !!!
우리 스스로와 사랑하는 후세대를 위하여 !
사람(人) 민족 조국을 위하여 !!
붙임)
오늘날,
국제정세는 반미.반제.자주(다극화 : 자주에 바탕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질서 수립)이고, 이러한 전지구적 흐름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멈춰세울수도 없고 되돌릴수도 없습니다. 나날이 더 빠르게 갈수록 더 강력하게 추동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제정세를 주도하는 국가는 조선(이북)과 로씨야(러시아) 입니다.
정의로운 반제자주에 있어서,
조선(이북)이 세계 반제자주의 중심축이자 동방의 중심축이고, 유럽의 중심축이 로씨야 입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국제정세를 읽으려면, 응당 조선(이북)과 로씨야의 소식(정부발표문, 신문, 방송...)을 보고 듣고 읽어야 합니다.
모두가
보고 듣고 겪고있는 바와같이,
인류의 적(敵)
서방유대양키악마는
결코 벗어날수없는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진채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마지막 발악을 하고있습니다. 전쟁에 미쳐날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애초 결정되어 있습니다. 서방유대양키악마 멸절 입니다. 물론, 그 괴뢰주구 미제깡패와 떨거지놈들도 멸절입니다.
거침없이 무너지고있는 서방유대양키악마와 그 꼭두각시 졸개들이 내돌리고 불어대는 거짓세뇌선전을 보고 듣고 읽으면, 그로써,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못하는 정신불구자 멍텅구리 바보로 만드는 것입니다.
※ 시장단신은 시장 저변의 흐름과 관련이 있는 내용 가운데서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http://www.rodong.rep.kp
주체113(2024)년 11월 12일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1)
《평화파괴의 악성종양은 어떻게 산생되였는가》
2024.11.12. 《로동신문》 6면
팔레스티나의 가자지대에서 타오른 무력충돌의 불길이 주변으로 타번지면서 중동이 참혹한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있다.
사태를 우려하는 많은 분석가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대에서 무차별적인 군사행동을 계속 벌리다 못해 레바논과 이란에로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미국의 기준으로 중동질서를 재수립하려고 시도하고있는것이 본질적원인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이스라엘은 명확히 중동평화파괴의 화근이다.
누가 중동에 이스라엘이라는 악성종양이 생겨나게 하였는가.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창건의 전후관계사를 살펴보면 알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팔레스티나지역에는 유태복고주의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유태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 군림하고있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에 아랍인들의 협력을 얻어내려고 수세기동안 오스만제국의 통치하에 있은 팔레스티나를 독립시켜주겠다는 《맥마혼선언》을, 그로부터 2년후인 1917년에는 팔레스티나땅에서의 유태국가창건을 지지한다는 《밸푸어선언》을 발표하였다.
영국의 량면술책은 아랍인들과 유태인들사이의 모순을 격화시켜 류혈충돌을 빚어내였고 영국에 대한 량측의 반감도 고조시키였다.
그때 유태복고주의를 제일 적극적으로 지지해나선것이 미국이였다.
1919년 빠리평화회의에서 미국은 팔레스티나땅에 유태인을 위주로 하는 독립국가를 창건할데 대한 방안을 들고나왔다.그에 이어 미국은 자국에서 살고있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팔레스티나지역에 투자하고 그곳에 기업을 창설하도록 하는 등 유태복고주의운동을 재정적으로 원조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나치스도이췰란드의 유태인말살정책으로 하여 유태국가창설에 대한 국제적인 동정의 여론이 조성된 흐름을 타고 팔레스티나땅에로의 유태인이주를 극구 지원하였다.
1942년 5월 뉴욕에서 미국유태복고주의자대표대회가 진행되였는데 대회에서 채택된 《빌트모어강령》은 영국의 통치를 끝장내고 전체 팔레스티나땅에 유태국가를 세우며 유태인이주와 령토문제에서 완전한 자유를 쟁취할것을 선언하였다.
미국정부는 이 강령에 전적인 지지를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팔레스티나인들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반대하여 완강히 투쟁하였으며 유태복고주의자들은 그들대로 수많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티나에 이주시키였다.
영국과 팔레스티나인들, 유태복고주의자들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것은 당연하였다.
미국은 영국이 진퇴량난의 처지에 빠지게 된것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지역에서 영, 프세력을 밀어내는 동시에 아랍인민들의 반제민족해방투쟁을 탄압말살할것을 획책하였다. 이를 위해 유태복고주의자들을 돌격대로 내세웠다.여기에는 유태복고주의자들의 호전성과 령토야망을 써먹는 동시에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식민지통치수법에 따라 아랍인과 유태인사이의 민족적 및 종교적인 반목을 증폭시켜 저들의 중동지배야망을 손쉽게 실현하려는 흉심이 있었다.
미국지배층과 유태인들사이의 깊은 유착관계도 작용하였다.
당시 수백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유태인들은 금융, 무역, 보건 등 여러 부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었으며 유태인단체들은 미국의 국회선거와 대통령선거전에서 후보자들이 반드시 쟁취하지 않으면 안될 영향력있는 대상이였다.
영국은 미국의 강경정책과 37억 5 000만US$의 《전후부흥원조》에 굴복하여 팔레스티나문제를 유엔에 넘기였으며 미국은 1947년 11월 유엔총회 제2차회의에서 팔레스티나를 분할하여 두개의 국가를 세울데 대한 결의를 통과시키였다.
아랍인들은 이를 완강히 반대하였으나 유태인들은 환성을 올렸다.
1948년 5월 14일 영국군이 팔레스티나에서 철수함으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는 종말을 고하였다.
그날 유태복고주의전국위원회는 유태민족회의를 열고 유태국가 이스라엘의 창건을 선포하였다.
그로부터 불과 몇분만에 미국은 이스라엘국가를 승인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렇게 되여 중동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악성종양-이스라엘이 산생되였다.
본사기자 장철
《멸망에 직면하였던 주구를 구원한 흉심》
2024.11.13. 《로동신문》 6면
이스라엘이 국가수립을 선포한 때로부터 8일이 지난 1948년 5월 22일 오후였다.
미국이 긴급히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한건의 결의안을 들이밀었다.
그 결의안은 《팔레스티나사태가 유엔헌장 제39조에 명시된 평화의 파괴원천이 되고있다.》고 성명할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그 결의안에는 또한 《전쟁을 중지하고 확고한 질서를 보장》할것을 관계정부당국들에 명령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당시 중동에서는 새로운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있었다.
팔레스티나땅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생겨나자마자 지역에서는 마치 유기체내에 이물이 생기면 면역계통이 발동되는것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였다.
그것이 바로 제1차 중동전쟁이였다.
이스라엘이 국가수립을 선언한 다음날인 1948년 5월 15일 여러 아랍나라가 저들에게 장차 큰 위협으로 될수 있는 이물이 더 성장하기 전에 미리 수술해버릴 목적으로 항쟁에 분연히 떨쳐나섰다.에짚트, 수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이 군사행동에 돌입하였고 예멘,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아랍나라들의 무력은 이스라엘을 동, 남, 북 3개 방향에서 공격하였다.
호상 협동하면서 이스라엘군을 각개격파할것을 계획한 이 나라들의 무력은 이스라엘의 방어선들을 돌파하여 목표로 삼은 지역들을 빠른 속도로 점령하였다.
남부전선에서 에짚트군은 꾸드스의 남쪽교외에까지 진출하면서 전과를 확대하였다.
이스라엘군은 전 전선에 걸쳐 붕괴직전에 처하게 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누구보다 당황망조해한것은 바로 미국이였다.유태인들을 저들의 앞잡이로 길들이고 국가를 창건하도록 숱한 품을 들인것이 물거품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미국이 《노력》한것들중에는 1945년 9월 대통령 트루맨이 직접 나서서 《나치즘으로부터 박해를 당하여 전쟁의 화를 입었던 유럽의 유태인》 10만명을 하루속히 팔레스티나에 이주시키자고 영국을 구슬려 실현시킨 일도 있었다.그렇게 함으로써 유태복고주의자들을 저들의 충실한 주구로 써먹을것을 꾀하였던것이다.
트루맨의 《제의》를 계기로 미국과 유태복고주의자들사이의 결탁이 확정지어졌다.
저들이 실행해온 계책이 풍지박산나는것을 막아야 하겠다고 타산한 미국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정화결의안을 제출하였던것이다.
1948년 5월 29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는 4주간에 걸치는 정화를 실시할데 대한 결의를 채택하였다.그리하여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간에는 6월 11일부터 7월 8일까지 불안정한 정화가 이루어지게 되였다.
정화 4주간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숨돌릴 틈을 얻고 재무장을 할수 있는 황금시간으로 되였다.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에 따르면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지원이 전반적으로 금지되여야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 결의를 아예 무시하고 정화기간 이스라엘에 비행기, 땅크를 비롯하여 숱한 신형무기와 막대한 군수물자를 보장해주었다.
또한 《질서유지》라는 명목밑에 영국군이 철수한 하이파항에 수백명의 미군무력을 투입하였으며 팔레스티나지역의 연안에 군함까지 대기시키고 아랍나라들을 무력으로 위협하면서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를 비호두둔해주었다.
미국의 뒤를 이어 서방나라들도 많은 무기와 군수물자를 대주면서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준비를 도와주었다.
4주간에 걸쳐 전쟁준비를 충분히 갖춘 이스라엘은 아랍나라들을 공격하면서 여러 지역을 강점하였다.
그러나 전선형편은 다시금 이스라엘에 불리해졌다.미국은 즉시 유엔안전보장리사회를 발동하여 제2차 정화를 실시하게 하였다.
이 기간 무력을 재증강한 이스라엘은 10월 15일 일방적으로 정화를 파괴하고 아랍나라들에 대한 제2차 공격을 감행하면서 약 6 700㎢에 달하는 팔레스티나땅을 강점하였다.
이스라엘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해줌으로써 미국은 그를 하수인으로 더욱 철저히 그러쥐고 중동지배의 돌격대로 써먹을수 있게 되였다.
중동평화의 악성종양을 시초에 제거하려던 아랍나라들의 계획은 실패하였다.
본사기자 리경수
《수에즈전쟁을 극구 부추긴 막후조종자》
2024.11.15. 《로동신문》 6면
1950년대에 들어와 중동에서 반제자주의 기운이 높아가는 속에 에짚트에서도 영국의 괴뢰였던 파르크왕조가 무너졌다.1953년 6월에는 에짚트공화국이 선포되였다.
에짚트는 영국과 맺었던 불평등조약을 페기하고 수에즈운하에서 영국군대를 철수시켰다.경제발전을 목적으로 건설하던 아스완언제건설에 대한 미국의 《원조》가 중지되자 1956년 7월 중요한 전략적의의를 가지는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포하였다.
그러자 제국주의자들은 에짚트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에짚트정부가 취한 수에즈운하의 국유화조치에 대해 《에짚트의 독단행위이며 운하항행의 자유에 위협을 준다.》라고 중상하면서 자국은행에 예금되여있던 에짚트의 자금을 동결시켰다.그리고 수에즈운하에서 일하던 영국인배길안내원들을 전부 철수시킴으로써 운하운영에 혼란을 조성시켰다.
프랑스도 성명을 발표하여 자국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다할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미국은 에짚트의 수에즈운하국유화선포로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된 영국과 프랑스의 불만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저들의 중동지배전략실현에 악용하였다.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는 관계국들에 중대한 영향을 줄것이다.》라고 떠벌이면서 자국내의 에짚트인자산 4억US$를 동결시켰는가 하면 영국, 프랑스와 《3개국회의》를 소집하고 공동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였다.성명에서 3개국은 1888년의 이스딴불조약에 의하여 담보된 운하의 운영제도를 확립한다는 구실밑에 국제회의를 소집할것을 제의하였다.목적은 수에즈운하를 《국제관리》라는 미명밑에 저들이 타고앉으려는데 있었다.이에 따라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런던에서는 22개국이 참가한 회의가 진행되였다.여기에서 미국은 운하를 《유엔과 련결된 국제위원회에 넘겨 관리》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그 제안이 여러 나라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자 미, 영, 프는 9월 또다시 18개국이 참가한 런던회의를 소집하고 《수에즈운하사용국협회》라는것을 조작하려고 하였다.그것 역시 에짚트의 완강한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수에즈운하를 《국제관리》밑에 두려던 음모가 파탄되게 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부추겨 에짚트에 대한 대대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게 하였다.
1955년에 에짚트정부가 수에즈운하와 주변해협에서 이스라엘선박의 항행을 금지시킨데 대한 보복의 기회를 노리고있던 이스라엘은 1956년 10월 29일 에짚트를 불의에 침공하였다.31일에는 영국, 프랑스가 이스라엘-에짚트분쟁에 간섭해나섰다.
이렇게 되여 제2차 중동전쟁, 일명 수에즈전쟁이 발발하게 되였다.
이 전쟁이 일어나도록 극구 부추기고 침략자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제공한 배후조종자가 바로 미국이였다.
중동지배전략실현을 위해 아랍나라들을 포함하는 《중동사령부》,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하는 《중동방위기구》(메토)를 조작하려다가 실패한 미국은 아랍나라들을 분렬약화시키며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에짚트에 대한 영국, 프랑스의 강도적인 침공을 극구 부추기는 동시에 에짚트령토인 시나이반도에 대한 이스라엘의 팽창주의적야망에 불을 달았다.
당시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중동에 대한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할데 대한 제안을 거부하였다.한편으로는 어용출판물들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에짚트에 대한 무력침공의 《도덕적권리를 가지고있다.》라는 강도적인 론리를 들고나왔다.
또한 미국은 이 나라들에 당시로서는 현대적인것으로 손꼽히던 땅크와 미싸일을 적재한 전투기, 각종 포를 비롯한 전쟁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넘겨주었다.공개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국은 프랑스에 36억US$분의 무기를, 영국에는 전투기를 위주로 하여 12억US$분에 해당한 무기를 원조하였다.
미국의 막대한 후원에도 불구하고 에짚트의 완강한 반침략투쟁과 국제적고립으로 전쟁을 계속할수 없게 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침략자들은 1956년 11월 7일 전투행동을 정지한다는것을 선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로써 제2차 중동전쟁은 막을 내리였다.
제2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중동에서 영, 프세력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미국은 자기의 지배권을 강화하게 되였다.
본사기자 김수진
《제3차 중동전쟁의 불씨로 된 요르단강개발계획》
2024.11.19. 《로동신문》 6면
제2차 중동전쟁이 끝난지 10여일이 지난 1956년 11월 24일 유엔총회 제11차회의에서는 사회주의나라들이 주동이 되여 제기한 결의안을 가결하였다.채택된 결의에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에짚트에서 군대를 즉시 철수시킬데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국제적압력에 못이겨 영국과 프랑스는 한달만에 저들의 무력을 전부 철수시켰다.
이스라엘군이 각종 구실을 대며 점령지에서 철수하려 하지 않자 1957년 2월 2일 유엔총회는 이스라엘군의 즉시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를 또다시 채택하였다.할수없이 이스라엘은 1957년 2월 시나이반도에서, 그해 3월 가자지대에서 철수하면서 그대신 수에즈운하를 자유롭게 통과할수 있는 담보를 받았다.하지만 아랍나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는 끊기지 않고 계속되였다.자료에 의하면 1958년부터 1964년 6월까지 이스라엘이 아랍나라들의 령공, 령해, 령토를 침범한 사건은 무려 1만 9 717건에 달하였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1962년에 이스라엘은 요르단강물줄기를 제멋대로 변경시킴으로써 아랍나라들의 리익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침략적인 요르단강개발계획에 따른것이였다.
중동에 《대유태제국》을 세울 망상밑에 1959년부터 요르단강개발계획을 세운 이스라엘은 요르단강상류의 물을 네게브사막으로 끌어들여 그곳을 개간하고 400만명의 유태인들을 여기에 정착시키려고 획책하였다.
요르단강은 레바논과 수리아의 남부지방에서 발원하여 팔레스티나북부의 튀베리야호를 거쳐 사해로 흘러드는 강으로서 수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등을 통과하는 중요한 국제하천이다.
이스라엘의 요르단강개발공사는 이 강물을 리용하는 아랍나라들의 생명선을 끊어놓는 날강도적행위로서 지역나라들의 강력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원래 이스라엘은 1953년에 아랍나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요르단강개발에 착수하여 수리아와의 비무장지대에 물길을 파고 네게브사막으로 요르단강물을 끌어올리는 놀음을 벌려놓았었다.그러나 수리아가 이 문제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제소하고 기구가 이스라엘에 요르단강개발공사를 중지할것을 요구하여 공사는 중지되였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끝끝내 요르단강개발계획의 간판을 뻐젓이 걸고 요르단강물줄기를 저들에게로 돌리는 건설을 벌려놓았다.
1964년 1월 에짚트대통령 나쎄르의 발기에 의하여 까히라에서는 제1차 아랍수뇌자회의가 진행되였다.
여기에서는 튀베리야호에서 요르단강물줄기를 돌려 강물이 이스라엘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물길변경계획이 작성되였다.
회의에서는 이스라엘의 요르단강개발계획을 규탄하는 성명이 발표되였다.
아랍나라들은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이스라엘의 목적은 유태복고주의자들의 팽창주의정책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그 방법은 더 많은 침략세력을 인입하여 아랍국가들의 안전과 진보 및 세계평화에 대한 더 많은 침략적중심을 설치하는데 있다.》
요르단강개발을 둘러싸고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사이의 대립이 첨예화되자 1964년 2월 5일 미국대통령 죤슨은 뉴욕에서 한 연설에서 《원자력을 리용하여 바다물을 담수로 만들기 위한 회담이 현재 자국과 이스라엘사이에 진행되고있다.》느니, 《물은 사람들을 분렬시킬수 없으며 사람들을 단결시켜야 하며 전쟁의 요인으로 되여서는 안된다.》느니 하고 횡설수설하였다.
수리아신문 《알 바아스》는 죤슨의 발언이 요르단강의 물길을 변경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책동을 지지해나선것이라고 규탄해나섰다.
아랍나라들이 미국의 책동에 반발해나섰다.
미국은 이스라엘국가가 생겨난 때부터 해마다 약 38억US$에 달하는 막대한 원조를 주어 유태복고주의자들을 무장시켰다고 한다.
미국의 전적인 지지비호밑에 이스라엘은 1964년 11월에 수리아를 폭격하였다.요르단강개발문제를 둘러싸고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의 대결은 점점 더 격화되였다.결국 그 대결이 제3차 중동전쟁에로 이어졌다.
본사기자 박진향
《6일전쟁은 아랍나라들에 무엇을 남겼는가》
2024.11.20. 《로동신문》 6면
1967년 6월 5일 8시경부터 18시까지 거의 10시간에 걸쳐 이스라엘은 300여대의 비행기들을 련속적으로 출격시키면서 에짚트와 수리아, 이라크와 요르단의 비행장과 항공기지들을 무차별적으로 타격하였다.단 하루사이에 에짚트는 비행사의 95%와 반항공미싸일중대의 대부분을 잃었다.다른 중동나라들에서도 많은 비행장과 비행기들이 파괴되였다.
제3차 중동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전쟁개시 첫날에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이스라엘은 지상부대를 출동시켜 3일만에 가자지대를 점령하고 수에즈운하에로 진출하였으며 시나이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하였다.10일 저녁에는 골란고원의 대부분과 디마스끄로 통하는 간선도로들을 통제권안에 넣었다.
이것으로 전쟁은 일단 막을 내렸다.
이 전쟁을 일명 6일전쟁 또는 6월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아랍나라들은 이스라엘에 변변히 대항해보지도 못하고 넓은 지역을 빼앗기는 참혹한 손실을 당하였다.
원인은 아랍나라들이 이스라엘의 기만술책에 녹아난데 있었다.
이스라엘은 2개월전부터 전쟁준비를 다그쳤다.미국으로부터 400대이상의 신형땅크와 250대이상의 비행기를 반입하는 등 전쟁장비를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 예비병력도 28만명이나 확보하였다.에짚트침공계획도 빈틈없이 세워놓았다.
작전의 불의성을 위해 이스라엘은 일대 기만극을 펼치였다.
이스라엘공군은 1965년부터 지중해상공에서 비행훈련을 같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반복하였다.초기 에짚트군 반항공전파탐지초소들은 이스라엘비행기들이 지중해로 진출하기만 하면 즉시에 그 행적을 공중경보망으로 통보하군 하였다.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감에 따라 점차 만성화되였다.하여 전쟁이 일어날 당시 에짚트군 반항공전파탐지초소들은 이스라엘공군의 출격에 대해 상부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 에짚트와의 관계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인상을 조성하는 동시에 에짚트가 저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아부재기를 치면서 여러 나라가 에짚트에 압력을 가하도록 하였다.여기에 합세해나선것이 미국이다.중동전쟁발발을 불과 며칠 앞둔 1967년 5월 29일 미국무성관리가 에짚트를 행각하여 《외교적교섭이 계속되는한 이스라엘이 공격하지 않을것》이라는 담보를 주었다.
에짚트는 중재자의 탈을 쓴 미국의 기만극에 넘어가 이스라엘을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담보까지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사촉자, 배후조종자였다.전쟁 전 기간 리비아의 미군기지와 지중해의 미항공모함전단은 이스라엘과 접촉을 유지하면서 에짚트군의 정보를 수집하여 넘겨주고 에짚트의 전파탐지망에 장애를 조성하였다.이것은 중동나라들의 촉각을 마비시킨 중요한 요인이였다.
당시 이스라엘이 강탈한 령토가운데는 수리아의 골란고원도 있다.
골란고원은 팔레스티나, 요르단, 레바논과 국경을 접한 전략적요충지이다.특히 이곳을 장악하면 장거리포로도 능히 수리아의 수도 디마스끄를 타격할수 있다.
그런것으로 하여 이스라엘은 오래동안 골란고원에 눈독을 들여왔으며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이곳을 장악하고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철군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수십년간 군사적강점을 지속하면서 유태인정착촌과 군사기지를 부단히 확대하였다.이스라엘은 1981년에 골란고원에 관한 법을 채택하여 이 지역을 일방적으로 저들의 령토에 병합시켰다.
미국은 골란고원에서의 이스라엘의 유태인정착촌확장책동과 군사연습을 적극 비호두둔하였으며 2019년 3월에는 유엔결의들을 무시하고 이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놀음까지 벌려놓았다.이것이 오늘도 중동의 불씨로 이글거리고있는 골란고원문제이다.
제3차 중동전쟁은 아랍나라들에 심각한 교훈을 새겨주었다.
침략자가 평화의 북통을 요란히 두드리는만큼 전쟁의 시각은 박두하며 원쑤와의 대결에서는 단 한순간의 해이가 그 무엇으로도 만회할수 없는 참혹한 후과를 몰아온다는것, 그리고 미국은 결코 《평화의 사도》가 아니라 침략의 원흉이라는것이다.
본사기자 은정철
《끈질기게 감행하는 유태인정착촌확장책동》
2024.11.21. 《로동신문》 6면
2010년 2월 18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이스라엘의 유태인정착촌건설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제출되였다.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거부권행사로 끝내 채택되지 못하였다.
결의안은 아랍나라들이 작성한것으로서 요르단강서안지역과 동부꾸드스에서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유태인정착촌건설책동을 규탄하고 이스라엘이 강점한 팔레스티나령토에서 이러한 행위를 당장 중지할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결의채택을 가로막은 후 유엔주재 미국대표는 《유엔은 유태인정착촌건설문제를 토의하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느니,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것은 이스라엘의 정착촌건설을 지지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느니 하며 뻔뻔스럽게 책임을 회피하려고 수선을 떨었다.
이스라엘의 침략행위와 살인만행, 유태인정착촌확장책동을 묵인조장하고 적극 비호하는 미국의 이런 행위는 처음이 아니였다.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이후 강점한 지역들에서 아랍인들을 강제로 내쫓고 유태인들을 이주시켜 비법적인 거주지역들과 군사시설들을 설치할 때마다 미국은 눈뜬 소경, 귀달린 벙어리처럼 놀아댔다.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결의안들이 제출되면 거부권을 휘두르며 그 채택을 가로막아나섰다.
미국을 방패막이로 삼은 이스라엘은 로골적으로 유태인정착촌건설을 강행하여왔다.
1967년 6월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의 가자지대와 시나이반도, 동부꾸드스지역을 포함한 요르단강서안지역, 수리아의 전략적요충지인 골란지역을 점령하였다.전쟁과정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랍령토의 총넓이는 6만여㎢에 달하였다.
이스라엘의 정착촌건설놀음은 중동지역에 《대유태제국》을 세우려는 유태복고주의자들의 령토팽창야망의 산물이다.
이스라엘침략자들은 정착촌건설에 항거하는 아랍인들을 닥치는대로 체포, 추방, 학살하였으며 아랍인마을에 불도젤과 땅크를 내몰아 그들의 생활터전을 깔아뭉개였다.또한 아랍인들의 토지, 과수원, 수원지 등을 강제로 몰수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아랍령토에 대한 이스라엘침략자들의 강점책동으로 하여 1967년부터 1970년대말까지 근 50만명의 팔레스티나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던 고향에서 쫓겨났다.요르단강서안지역에서 살던 아랍인들의 수는 32%나 줄어들었으며 골란지역에는 겨우 8%의 아랍인들만이 남았다.또한 이스라엘이 《농업용》이니, 《군사용》이니 하는 구실을 대고 강제로 빼앗은 아랍인들의 땅만 해도 수백㎢에 달하였다.
정착촌들이 건설된 지역들은 땅이 비옥하다.기후가 비교적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으며 바람이 세지 않아 알곡, 남새, 과일이 잘된다.
시나이반도남쪽지역에는 많은 량의 원유가 매장되여있는데 유전이 개발되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이스라엘의 원유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강점한 요르단강서안지역, 골란지역 등은 수리아, 레바논 등을 비롯한 아랍나라들을 침략하기 위한 군사적교두보라고 할수 있다.
실지 이스라엘은 그곳들에서 주변나라들과 무장충돌행위를 자주 감행하군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스라엘이 강점한 아랍땅을 《유태화》하며 그곳을 거점으로 중동나라들에 대한 침략을 계속 강행하여 령토팽창야망을 기어이 실현해보려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팔레스티나를 비롯한 아랍나라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항의, 국제사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1993년 9월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사이에 《팔레스티나인자치에 관한 원칙선언》(오슬로협정)이 체결되였다.이 협정에는 이스라엘군을 가자지대와 예리코시에서 4개월내에 철수시키며 팔레스티나인들에게 제한된 자치권을 부여할데 대한 내용이 명시되여있다.또한 2년안으로 지역의 포괄적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여 5년안으로 그 해결을 실현할것을 예견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5년에야 가자지대에서 무력철수놀음을 벌려놓았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정착촌확장책동으로 하여 중동정세는 항시적으로 복잡하고 긴장한 상태에 놓여있다.
본사기자 박진향
《10월전쟁이 새겨주는 교훈》
2024.11.26. 《로동신문》 6면
제3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새로운 전쟁준비를 다그치면서 군사비를 무려 4배로 확대하였다.
1973년에 들어와 미국과 이스라엘은 중동정세를 극도로 첨예화시켰다.6월중순에는 이스라엘침략자들이 수리아-레바논국경에 약 10만명의 무력을 집결시키고 무장도발을 끊임없이 일으키였다.10월 6일 이스라엘침략자들은 에짚트와 수리아에 대한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에짚트와 수리아는 과감한 군사적반격으로 이스라엘의 군사적도발책동을 단호히 분쇄하기로 합의하였다.에짚트와 수리아는 련합무장부대를 조직하고 통일적인 작전계획을 세웠으며 맹렬한 포화를 들씌우는것으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싸움에 떨쳐나섰다.
이렇게 되여 일명 10월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였다.
전쟁은 에짚트쪽의 시나이전선과 수리아쪽의 골란전선에서 진행되였다.
시나이전선에서는 에짚트, 알제리, 뜌니지 등의 군대들이, 골란전선에서는 수리아, 이라크, 마로끄 등의 군대들이 이스라엘군을 공격하였다.에짚트무력은 이스라엘이 다년간 품들여 《난공불락의 요새》로 구축해놓은 방어선을 순식간에 돌파하였으며 수에즈운하동쪽의 땅을 되찾았다.이와 동시에 수리아군도 전면적인 공격을 단행하여 골란지역의 일부를 되찾았다.
이스라엘은 전쟁개시후 3일동안에만도 1967년 전쟁기간에 입은것보다 더 큰 손실을 당하였다.수천명의 군대와 수백대의 비행기, 땅크를 잃었으며 주요진지들을 내놓지 않으면 안되였다.
전쟁형세가 기울어지자 미국은 《SR-71》정찰기로 촬영한 전쟁상황에 대한 사진정찰자료들을 이스라엘군에 제공하는 한편 지중해에 있던 4척의 핵잠수함과 여러척의 항공모함 및 상륙분함대를 포함하여 근 50척에 달하는 군함들로 이스라엘의 해상전투행동을 지원하였다.
미국의 지원밑에 이스라엘은 재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10월 11일 전 전선에서 반공격으로 이행하였다.이스라엘군은 에짚트군진지를 돌파하고 수에즈운하를 넘어 수도 까히라를 위협하였으며 동시에 수리아의 디마스끄도 포사격의 사정거리안에 두게 되였다.
10월 25일 교전쌍방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결의를 접수하고 정화를 선포하였다.
다음해 1월 이스라엘은 에짚트와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할데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수에즈운하서쪽과 동쪽의 부분적인 점령지역에서 철수하였다.같은 해 5월 수리아와도 류사한 협정을 맺고 점령하였던 령토와 제3차 중동전쟁으로 차지하였던 골란지역의 일부를 내놓았다.
10월전쟁은 단결하여 싸우면 승리한다는 진리와 함께 제국주의자들의 교활한 량면술책에 추호의 환상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새겨주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아랍나라들은 군사적공동작전을 진행하는 동시에 석유수출을 금지하는것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제국주의나라들에 집단적보복을 가하였다.예상치 않았던 석유위기에 직면한 영국, 프랑스, 이딸리아, 에스빠냐는 미국의 수송기가 자기 나라의 령공을 통과하여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중수송하는것을 거부하였다.
아랍나라들의 단결의 위력앞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1975년 이스라엘과 에짚트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여 량측간에 완충지대가 설정되고 적대적인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1979년 3월 미국의 중재밑에 에짚트와 이스라엘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였다.
그러나 이 평화의 장막뒤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무력증강과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각종 전투기들의 납입량을 늘이였으며 1975년말에는 현대적인 추격기들로 이루어진 첫 비행대를 창설하였다.이외에 숱한 무장장비들을 구입하여 항공 및 반항공분야에서 아랍나라들에 비한 결정적인 우세를 차지하게 되였다.
본사기자 장철
《레바논전쟁을 부추긴 간특한 속심》
2024.11.28. 《로동신문》 6면
제4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침략의 예봉을 레바논에로 돌리였다.
당시 팔레스티나해방조직 중앙위원회가 레바논의 수도 바이루트에 자리잡고있었다.팔레스티나해방조직 무장력은 레바논남부에 거점을 두고 반이스라엘투쟁을 계속 벌려나갔다.
1978년 3월 이스라엘인들이 탄 뻐스가 텔 아비브부근에서 전복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소행으로 몰아붙인 이스라엘은 그에 대한 《보복》을 운운하며 레바논에 침입하였다.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레바논남부에 《안전지대》를 창설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스라엘은 보다 큰 전면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기회만을 노리였다.바로 그러한 때인 1982년 6월 3일 영국주재 이스라엘대사가 런던에서 3명의 아랍인들에 의해 저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이스라엘은 그것을 무작정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소행이라고 고집하면서 레바논남부에 있는 팔레스티나항쟁세력기지들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과 포격을 감행하였다.팔레스티나해방조직 무장력이 이에 대한 보복타격을 가하자 이스라엘침략자들은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6일 레바논남부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작전을 시작하였다.이로써 레바논전쟁이 발발하였다.
레바논전쟁은 공방전을 거듭하다가 8월에 팔레스티나해방조직과 이스라엘사이의 정화합의가 이룩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였다.
사실상 레바논침략전쟁은 이스라엘을 내몰아 아랍나라들을 각개격파하여 중동지역을 제 손아귀에 거머쥐려는 미제의 일관한 지배전략에 따른것이다.미제는 이 전략을 수행하는데서 팔레스티나항쟁운동을 주되는 장애물로 보고 이를 소멸하도록 이스라엘을 부추기고 뒤받침해주었다.
미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침략을 사전에 모의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침략행위를 확대하도록 조건을 조성해주었다.이스라엘국방상을 워싱톤에 불러들여 침략계획을 구체적으로 모의하였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곧 지중해수역에 항공모함을 집결시키고 레바논과 팔레스티나인민들을 위협하였다.
미제는 전쟁초시기에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레바논으로부터의 이스라엘침략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으며 침략자들에 의하여 서부바이루트가 봉쇄되고 여러날째 생활용수와 전기, 식료품공급이 단절되여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있을 때 유엔에 제출된 서부바이루트봉쇄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반대해나섰다.뿐만아니라 미제는 이스라엘침략자들에게 각종 살륙무기들을 넘겨주었으며 지어 투항할것을 팔레스티나해방조직에 요구하면서 이스라엘군을 서부바이루트에 투입시키겠다고 한두번만 위협하지 않았다.
9월 이스라엘침략자들이 서부바이루트에 들어가 두개의 팔레스티나피난민수용소를 포위하고있을 때 미국의 중동특사 드레이퍼는 이스라엘수상 베긴과 마주앉아 밀담을 벌렸다.같은 날 미국무성은 성명을 발표하여 미국은 서부바이루트로부터 이스라엘의 철수에 관한 《각본을 내보일 생각이 없다.》고 함으로써 이스라엘침략자들이 마음놓고 레바논의 수도에 틀고앉아 소름끼치는 만행을 감행하도록 허용하였다.
바이루트에서 대학살만행이 감행되고 전세계가 격분에 넘쳐 이스라엘을 단죄하며 징벌할것을 요구하고있을 때 미국대통령 레간은 방송연설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속죄할수 있게 하는 《징벌》이란 없다고 하면서 하수인을 두둔해나섰다.
레바논전쟁은 팔레스티나를 비롯한 아랍나라들에 커다란 불행과 재난을 들씌웠다.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만명의 평화적주민들이 희생되고 수십만명의 인민들이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게 되였다.팔레스티나해방조직 성원들은 투쟁무대를 다른 아랍나라에로 옮기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이스라엘침략자들의 무분별한 령토팽창야욕과 미제의 교활한 간섭책동으로 하여 민족적자주권과 령토를 되찾으려는 팔레스티나인민들의 투쟁은 가슴아픈 실패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본사기자 김수진
《꾸드스는 어떻게 병합되였는가》
2024.11.29. 《로동신문》 6면
꾸드스는 예로부터 아랍인들의 도시로서 이슬람교성지로 알려져있다.이 도시에는 아랍인들의 슬기를 보여주는 고대, 중세시기의 유적과 유물들이 많다.
이스라엘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때 꾸드스의 서부지역을 강점하고 이곳에 국회와 정부기관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1967년 제3차 중동전쟁때에는 꾸드스의 동부지역마저 강점하였다.이어 동부꾸드스에서 문화유적들을 마구 파괴하면서 수많은 아랍인들을 강제추방하고 정착촌을 건설하는데 달라붙었다.
동부꾸드스를 병합하고 꾸드스의 지위를 변경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책동이 로골화되는것과 관련하여 1980년 6월에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7월에는 유엔총회 긴급특별회의가 소집되였다.유엔총회 긴급특별회의는 7월 30일 112개 성원국의 찬성밑에 동부꾸드스를 포함하여 강점한 모든 아랍땅에서 이스라엘이 무조건 철수할것과 팔레스티나독립국가의 창건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결의는 이스라엘이 1980년 11월 15일전으로 철수를 시작할것을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엔총회 결의가 채택된 바로 그 다음날에 동부꾸드스를 이스라엘에 병합하며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영구적이며 불가분리의 수도》로 선포하는 부당한 법을 국회에서 채택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법채택놀음을 통해 동부꾸드스뿐 아니라 1967년에 강점한 아랍나라들의 땅을 영원히 집어삼키려는 강도적인 야망을 드러내놓았다.
이스라엘의 이 행위는 아랍나라들은 물론 사회주의나라들과 쁠럭불가담나라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 세계평화애호인민들로부터 강력한 규탄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아랍나라들은 이스라엘의 강도적인 행위에 격분을 표시하면서 《꾸드스를 되찾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싸울》 각오를 다지였다.또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나라와는 외교 및 경제관계를 단절하기로 하였으며 꾸드스에 대사관을 두고있는 나라들이 대사관을 텔 아비브로 옮기도록 요구하였다.그에 따라 여러 나라가 꾸드스로부터 대사관을 철수하였다.
세계가 물끓듯하는 속에 1980년 8월 20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는 꾸드스를 수도로 규정한 이스라엘의 《기본법》을 무효로 선언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군사적지원을 주고 아랍나라들에 대한 침략을 극구 부추기면서도 꾸드스를 저들의 합법적인 수도로 만들려는 하수인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호두둔하는것만은 삼가하였다.그것은 비교적 단합되여있은 아랍나라들과 사회주의나라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한 규탄과 항의, 그로 인해 초래될 국제적고립과 경제적파국을 감당하기 힘들었던것과 관련된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며 꾸드스를 수도로 선포하려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로골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2001년 3월 7일 당시 미국무장관 포웰은 미국회에서 한 증언에서 꾸드스는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하면서 대통령 부쉬가 이스라엘주재 미국대사관을 텔 아비브로부터 꾸드스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하여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중동나라들과 아랍국가련맹 등 여러 기구와 국제사회가 이를 강력히 규탄하자 미국은 《꾸드스문제에서 미국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사실해명》을 하는 놀음을 벌렸다.하지만 그 다음해에 미국회는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데 대한 법을 채택하고 부쉬가 이에 수표하여 법효력을 발생시켰다.
그후 10여년이 지나 미국은 또다시 꾸드스를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포하였다.그리고 미국대사관을 텔 아비브로부터 꾸드스로 옮기였다.
미국의 비호와 지지밑에 감행된 이스라엘의 꾸드스병합은 힘이 약하면 자기 땅도, 인민의 안녕도 지켜낼수 없다는 교훈을 국제사회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박진향
《골란지역의 강도적인 병합과 그 배후》
2024.12.2. 《로동신문》 6면
골란지역은 수리아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시기 이스라엘에 의해 강점당하였다.당시 이스라엘은 골란지역의 면적 1 860㎢가운데서 약 1 260㎢를 무력으로 차지하였다.
이스라엘이 강점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약 13만 3 000명의 수리아인들이 살고있었다.
골란지역은 군사적으로 볼 때 팔레스티나, 레바논 등과 국경을 접한 전략적요충지이다.이곳에서는 장거리포를 가지고도 능히 수리아의 수도 디마스끄를 타격할수 있다.그로부터 이스라엘침략자들은 골란지역에서 살던 수많은 수리아인들을 내쫓고 28개소에 유태인정착촌을 건설하였다.한편 이곳에 침략무력을 집결시켜놓고 대규모군사연습을 때없이 감행하면서 지역나라들의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였다.
이스라엘의 군사적도발과 침략책동으로 하여 이 지역에서는 전쟁발발의 위험이 날로 커갔으며 그것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규탄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나라들의 요구에 의해 이 문제는 유엔무대에서 취급되였다.
1974년 5월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 제338호에 의하여 이스라엘은 수리아와 골란지역에 대한 병력분리협정에 조인하지 않으면 안되였다.이 협정에 따라 1 300명의 유엔병력감시군이 골란지역의 수리아와 이스라엘진지들사이의 비무장지대를 감시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골란지역을 영구강점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1980년 7월 30일 꾸드스를 병합하여 저들의 수도로 정한다는 법을 채택한 후 이스라엘은 골란지역을 영구강점하려는 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기 시작하였다.
1981년 3월 이스라엘의 극우익정당출신 국회의원 코헨이 골란지역을 병합할데 대한 법안을 제출하였다.하지만 당시 이스라엘국회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다.꾸드스의 병합문제로 가뜩이나 고조되여있는 국제사회의 분노와 항의가 더욱 세차게 끓어번지는것이 두려웠기때문이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총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수상 베긴은 《적당한 시기에 병합할 방침》이라고 하면서 골란지역을 완전히 저들의 령역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실행에 뻐젓이 달라붙었다.
이스라엘은 1981년 12월 국회에서 수리아의 골란지역에 저들의 법과 재판권, 행정권을 적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다음 골란지역을 병합한다는것을 결정하였다.이로써 이스라엘은 《대유태국가건설》의 간판을 든 날강도적인 령토팽창주의자, 중동의 매우 위험한 침략자로서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놓았다.
이스라엘의 골란지역병합행위는 중동에서 전쟁위험이 보다 증대되고 령토강탈을 노린 침략행위가 더욱 로골화될수 있다는것을 시사해주었다.
골란지역의 병합을 선포한 후 이스라엘은 그곳에 장갑차, 비행기 등 전쟁장비와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였다.
전체 아랍나라들과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망동을 규탄배격하였다.
아랍나라들은 수리아의 골란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병합책동을 규탄하며 이스라엘에 제재조치를 취할것을 호소하는 결의안을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제출하였다.결의안에는 강점된 수리아의 골란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취한 조치들은 침략행위로 된다고 규탄하고 각국 정부들이 이스라엘의 병합을 무효로 하기 위하여 《구체적이며 효과적인 조치들을 취할것》과 《모든 분야에서 이스라엘에 그 어떤 성원도 원조도 주지 말며 이스라엘과 협조하지 말것》 등을 호소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의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행사로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채택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이 골란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하였을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과 체결한 《전략적인 협조에 관한 협정》의 효력을 정지시킨다고 떠들면서 《분개》를 표시하였었다.하지만 그것이 세계여론을 기만하기 위한 한갖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을 스스로 드러내놓았다.
당시 어느한 아랍나라 정부는 성명에서 미국의 무제한한 지원이 없이는 이스라엘침략자들이 수리아의 골란지역에 대한 병합결정을 내릴수 없다고 규탄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미국이 해마다 이스라엘에 주는 군사경제적원조는 30억US$에 달하였다.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무장하고 령토팽창에 미쳐날뛰고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감행한 골란지역에 대한 강제적병합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다는것을 폭로해주고있다.
본사기자 박진향
《두번째 레바논전쟁을 일으킨 흉심은 어디에 있었는가》
2024.12.6. 《로동신문》 6면
2006년 7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에 대한 군사적침공을 확대하면서 레바논에 대규모적인 공습을 가하였다.
레바논의 애국력량조직인 히즈볼라흐는 이에 무력으로 강력히 대응하였다.
이로써 레바논에서 또다시 격렬한 무장충돌이 일어났다.
1982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무장세력을 소탕한다고 하면서 감행한 레바논전쟁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것을 제2차 레바논전쟁이라고도 하였다.
이스라엘은 히즈볼라흐의 거점인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레바논의 전 령토를 공격하였으며 다리와 도로, 발전소, 학교, 사원 등을 닥치는대로 파괴하였다.
30여일간에 걸치는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군사적공격으로 어린이들과 부녀자, 늙은이들을 포함하여 레바논의 민간인 1 287명이 죽고 4 054명이 부상당하였다.총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00만명이상이 피난민으로 전락되였다.지어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국제적으로 사용금지된 송이폭탄까지 넘겨받아 무고한 레바논인들의 머리우에 마구 퍼부었다.
이스라엘의 이 반인륜적인 망동은 국제사회의 광범한 규탄을 불러일으켰으나 오직 미국만이 이스라엘을 극구 비호하였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비난하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결의안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으로 국제사회의 정화요구를 일축하였으며 이스라엘에 지하목표를 타격하는데 사용할 레이자유도폭탄을 비롯한 각종 살인무기들을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을 막후에서 조종하고 부추긴 미국의 범죄적정체와 음흉한 속심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국잡지 《뉴요커》가 폭로한데 의하면 레바논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미국은 이스라엘측과 전쟁각본을 짜놓고있었다고 한다.
히즈볼라흐의 대응을 유도하여 전쟁을 도발하고 그 책임을 히즈볼라흐에 넘겨씌우며 레바논정부와 히즈볼라흐사이에 대립을 조장시켜 이 세력을 국제적으로 고립약화시킨다는것이 각본의 골자였다.
당시 유럽의 한 신문은 《워싱톤이 원하지 않고 미국의 비호와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이 그토록 엄청난 군사행동을 하지 못했을것이다.워싱톤은 올해(2006년) 봄 미국을 방문한 이스라엘관리들과 히즈볼라흐에 대한 공격계획을 토의하였으며 5월에 이를 최종승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미국이 왜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을 부추기였는가.
2005년 3월 레바논에서는 반정부파인물이였던 이전 수상 하리리에 대한 암살사건을 계기로 《잣나무혁명》이라는 《색갈혁명》이 일어났다.
반정부세력은 그를 구실로 소요를 일으키고 정부를 사임에로 몰아갔다.막후조종자는 다름아닌 미국이였다.
미국의 기도는 두주일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사임하였던 정부는 복귀되였다.
미국의 사촉밑에 일어난 《잣나무혁명》에 강력한 반기를 든것은 히즈볼라흐였다.
《잣나무혁명》의 실패는 미국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이로부터 미국은 히즈볼라흐를 두고서는 레바논자체를 틀어쥘수 없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그뿐 아니라 히즈볼라흐가 있는한 저들이 장차 이란에 군사적압박이나 공격을 가하는 경우 심대한 배후타격을 면치 못한다는것을 인식하게 되였다.
당시 미국무장관은 레바논전쟁을 《새 중동의 탄생을 알리는 진통》으로 묘사하면서 미국이 바라는 정화는 단순히 쌍방사이의 자제나 공격중지가 아니라 히즈볼라흐의 완전한 무장해제라고 공언하였다.
외신들은 미국의 속심은 반미세력인 히즈볼라흐를 약화시키는 한편 레바논정부에 친미바람을 더욱 불어넣어 레바논남부에서 통치권을 행사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는데 있다고 평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레바논전쟁은 미국이 중동전략실현의 길안내자, 하수인인 이스라엘을 추동하여 벌린 히즈볼라흐를 제거하기 위한 대리전쟁, 반이란시험전쟁이였다.
미국의 이러한 기도는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규탄과 레바논항쟁세력의 강력한 저항과 보복공격으로 실현될수 없었다.
8월의 정화실시에 이어 10월 1일 이스라엘이 레바논남부로부터 무력을 철수시킴으로써 전쟁은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로 막을 내리였다.
본사기자 장철
(끝)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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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등대고 그토록 오만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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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6일
《누구를 등대고 그토록 오만한가》
2024.11.16. 《로동신문》 6면
얼마전 이스라엘수상 네타냐후가 내각회의에서 지난 9월 레바논과 수리아의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휴대용무선호출기폭발사건이 저들의 소행이라고 공개하였다.자기가 휴대용무선호출기와 관련한 작전을 진행하려고 하였는데 일부 관리들이 《미국이 반대할것》이라고 하면서 만류하였다는것, 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고 작전을 강행하였다는것이다.
지금 세계각지에서 테로사건이 매일같이 일어나고있다.많은 경우 주범들은 자기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사리분별을 잃은 광신적인 테로분자들이나 단체들만이 저들의 행동임을 보란듯이 공개한다.
집권자라는 인물이 세계를 경악케 한 국가테로사건을 저들의 소행이라고 공개하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다.그만큼 네타냐후는 애당초 죄의식이라는것이 전혀 없는 상습적인 테로범, 희세의 랭혈한이다.
이스라엘자체가 국가테로로 생존해온 나라이다.
가자사태가 발생한이래 무고한 팔레스티나인들을 4만 3 500여명이나 학살하고 10만 2 00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고도 저들의 군사작전과정에 사실상 민간인사상자가 난것은 없다고 떠벌이는 파렴치한이니 《불과 수천명이 피해를 입은》 휴대용무선호출기폭발사건같은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나오고있는것이다.
최근 새로 취임한 이스라엘국방상은 《이란의 침략을 저지시키고 그의 능력을 소멸》하고 《하마스의 가자지대통치를 종식》시키며 《히즈볼라흐를 소멸》하는것이 저들의 주요목표라고 내뱉았다.수상이나 국방상이나 한바리에 실어도 짝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누구를 믿고 이토록 오만한가.그에 대해 재삼 까밝힌다면 이스라엘이 믿는것은 미국이고 그의 변함없는 후원이다.
부언하건대 중동지역에서의 폭력의 악순환은 바로 미국이 몰아온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동지역에 산생시켜놓은 악성종양이다.침략과 살륙, 테로 등 자기와 꼭같은 유전자를 가지고있는 이스라엘을 미국이 어떻게 대해주겠는가는 불보듯 명백하다.
지난해 10월 가자사태가 터지자마자 미국은 이스라엘의 대응에 그 어떤 붉은 선도 설정하지 않았다고 공언하였다.
국제적으로 정화를 실현하고 전쟁을 종식시킬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있지만 미국만이 이스라엘을 정치군사적으로 끊임없이 후원하고있다.네타냐후를 미국회연단에 올려세워 열성껏 격려까지 하였다.지어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대에서 팔레스티나인들을 살해하는것을 대학살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떠벌였다.
미국은 피에 주려 발광하는 살인마에게 각종 중무기와 탄약을 비롯한 많은 군수물자를 아직까지도 제공하고있다.그중에는 두꺼운 콩크리트도 산산쪼각낸다는 근 1t짜리 《MK-84》폭탄과 《헬파이어》정밀유도공대지미싸일, 지하관통폭탄도 있다.
이스라엘은 상전이 막대한 자금을 풀어 련속적으로 넘겨주는 폭탄과 미싸일들을 가자지대에 마구 퍼부어 세계를 경악케 하는 사태를 빚어냈다.
친미, 친이스라엘적인 서방나라 정객들까지도 가자지대의 인명피해상황과 인도주의형세가 이미 《용인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시인하면서 이스라엘의 야만적행위를 비난하는 판인데 유독 미국만이 하수인을 비호두둔하는데 여념이 없다.전쟁을 비롯한 각종 무력충돌을 돈벌이공간으로 삼고 세계곳곳에서 빚어지는 참사들에서 《번영》의 기회를 찾는데 이골이 튼 세계최대의 전쟁상인인데다가 이스라엘을 앞잡이로 내세워 중동지역을 영원히 틀어쥐겠다는 정책도 변함없으니 결과는 명백한것이다.
특등전쟁상인 미국의 흉악한 마수를 끊어버려야 가자지대에서의 류혈참극뿐 아니라 세계를 불안케 하는 각종 무력충돌의 발발을 멈출수 있다.
허영민
[누구를 등대고 그토록 오만한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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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6일
[인류의 평화지향에 또다시 도전한 악의 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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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2월 3일
《인류의 평화지향에 또다시 도전한 악의 제국》
2024.12.3. 《로동신문》 6면
얼마전 팔레스티나의 가자지대에서 무조건적인 정화를 실현하며 민간인들에 대한 기초적인 봉사와 인도주의원조를 즉시 제공할것을 요구하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표결에서 미국이 또다시 반대표를 던졌다.지난해 10월 가자사태가 발생한 이후 벌써 6번째로 되는 미국의 단독거부권행사이다.이로써 《인권옹호자》, 《인권표본국》으로 자처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천인공노할 반인륜적인 대량학살만행을 극구 비호두둔하고있는 미국의 파렴치성과 이중기준적행태가 다시금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가자지대정화와 관련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안은 13개월이상이나 지속되고있는 무력충돌로 하여 4만명이 훨씬 넘는 민간인사망자와 전례없는 인도주의재난이 초래되고있는 엄중한 상황을 놓고 10개의 비상임리사국들이 수주일동안의 진지한 협상을 거쳐 작성제출한것이였다고 한다.시급한 정화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강렬한 지향을 반영한것이였다.
그러나 미국은 거부권을 휘둘러 유엔안전보장리사회와 국제사회의 정화노력을 또다시 침체상태에 빠뜨리였으며 이스라엘의 반인륜적인 집단학살만행에 푸른등을 켜주었다.
이 엄청난 악행을 놓고 따지지 않을수 없다.
미국은 이번의 정화결의안에 인질석방과 관련한 조항이 없다고 앙탈을 부리였는데 결의안에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정화와 함께 모든 인질들의 즉시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한다고 명백히 지적되여있다.
팔레스티나이슬람교항쟁운동(하마스)의 테로공격이 현 사태를 빚어냈다고 하는것도 궤변이다.
국제사회는 가자사태의 근원이 한 당사자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자기의 땅에 국가를 세울 권리조차 거부당하고 다른 당사자는 남의 땅에 자기의 국기를 꽂고 수차례의 전쟁과 살륙으로 령지를 넓혀온 오랜 력사적부정의에 있다고 평하고있다.
이외에도 미국은 가자지대에 대한 인도주의원조제공이니, 인도주의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것이라느니 하는따위의 시시껄렁한 소리들을 늘어놓았는데 하나같이 속검은 횡설수설뿐이여서 구태여 론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미국의 행위는 명백히 국제법도 안중에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편들기이며 안전보장리사회에서의 거부권을 도용하는 오만한 인권유린, 이중기준의 극치이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거부권은 대량살륙과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막기 위해 안전보장리사회 상임리사국들에 부여된 권리이다.
그러나 미국은 랭전시기에는 물론 랭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저들의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거부권을 마구 람용하여 세계평화와 안전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를 강점한 때로부터 80년을 가까이하는 오늘까지도 중동에서 전쟁범죄와 대량살륙의 류혈이 멎지 않는것은 미국의 이 오만한 태도가 빚어낸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가자사태가 발생한 이후만 놓고보아도 미국이 지난해 첫 거부권을 행사하였을 때에는 약 3 000명의 팔레스티나민간인이 사망하였고 두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시점에서는 1만 7 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올해 2월 세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하였을 때 근 3만명의 사망자와 약 7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4월 다섯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하였을 때에는 사망자수가 3만 4 000여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번 여섯번째 거부권행사의 시점에서는 팔레스티나인사망자수가 4만 4 056명, 부상자수는 10만 4 268명으로 늘어났다.
이 끔찍한 사상자수는 《인권옹호자》니, 《인권표본국》이니 하고 자처하는 미국이 인권은커녕 오히려 극악한 대량살륙만행을 옹호하는 희세의 인권유린국, 유태복고주의자들에게 방대한 각종 살인무기들을 쥐여주어 대학살과 파괴에로 끊임없이 내모는 평화의 원쑤, 인류의 적이라는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미국의 거듭되는 악행을 보며 국제사회가 분노로 끓고있다.
정화가 문제해결의 첫걸음인데 국제법이 이스라엘에는 다르게 적용되는가.수만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이 아직도 부족한가.얼마나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야 하겠는가.
이스라엘에 의해 지난 1년간 제2차 세계대전과 윁남전쟁에서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살해되고 력사상 가장 많은 320여명의 인도주의활동가들이 사망하였으며 1 000여명의 의료성원들이 죽었다.《인권옹호》, 《언론의 자유》를 운운하는 미국이 어째서 이에 대해 침묵하는가.
비발치는 이 절규는 미국이야말로 팔레스티나인민들의 생존과 희망, 인류의 정의와 량심을 유린하는 악의 제국이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장철
[인류의 평화지향에 또다시 도전한 악의 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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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2월 3일
[내걸자마자 깨여져나가는 《정화》의 간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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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2월 5일
《내걸자마자 깨여져나가는 《정화》의 간판》
2024.12.5. 《로동신문》 6면
레바논애국력량조직인 히즈볼라흐와 이스라엘사이에 정화합의가 이룩되였다.
합의조항들에는 이스라엘군이 60일안에 레바논남부지역에서 철수하며 동시에 히즈볼라흐도 전투원들을 리타니강북쪽으로 이동시킬데 대한 내용이 반영되여있다.정화합의는 현지시간으로 11월 27일 4시부터 정식 발효되였다.
그로써 레바논에로 확대되여가던 무력충돌사태를 정지시킬수 있는 제도적장치가 마련되였다.
정화합의가 발효된 즉시 레바논정부는 이스라엘에 강점한 남부지역에서의 철수를 시작할것을 요구하면서 해당 지역에 군대와 안전군을 비롯한 무력을 증강배비하여 국가의 안전을 수호할 립장을 천명하였다.
국제사회는 정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민간인들의 안전이 보장될수 있게 되였다고 안도감을 표시하고있으며 정화합의가 철저히 준수되기를 기대하고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화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레바논에 대한 군사적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정화합의가 발효된 다음날 아침 이스라엘군이 레바논남부지역의 한 마을에 있던 승용차를 목표로 무인기공격을 감행한것이다.
이스라엘은 차를 탄 여러명의 《수상한자》가 마을에 들어와 정화합의를 위반하였다, 그에 대응하여 차주변에 경고사격만을 가하였다고 하면서 저들의 군사행동을 정당화하려들었다.그러나 그것은 정화합의위반범죄를 가리우기 위한 날강도적궤변에 불과하였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이스라엘측이 《인명피해를 피하기 위한 경고사격》으로 묘사한 무인기공격으로 하여 적어도 레바논인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것은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같은 날 이스라엘측은 《테로활동을 포착한데 따라 위협을 해소》한다는 간판밑에 레바논남부지역에 공습을 가하였다.다음날에는 히즈볼라흐의 중거리미싸일발사대를 타격한다고 하면서 또다시 이 지역에 대한 공중타격을 감행하였다.현재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군의 일방적인 군사행동만이 계속되고있다.
이스라엘군은 정화합의가 발효된 후 성명이라는데서 《우리는 레바논남부지역에 의연 남아있으며 정화합의위반행위를 단호히 억제할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정화합의위반행위에 대한 억제행동》이라는 이스라엘측의 론거는 그야말로 생억지이다.말하자면 레바논인들의 활동은 《정화합의위반행위》이고 저들의 군사적침략은 그에 대한 《억제행동》이라는것이다.
레바논인들은 어디까지나 레바논남부지역의 주인들이고 침략자는 이스라엘이다.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침략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장치가 바로 정화합의인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침략자들은 《정화합의위반에 대한 억제》를 방편으로 내들고 레바논에 대한 저들의 침략행위를 계속하고있다.결국 레바논남부지역에서 정화합의는 레바논인들의 손발을 얽어매고 이스라엘의 군사적침략행위에 합법성을 부여해주는 역작용을 놀고있는셈이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정화합의채택에 응해나서기는 하였지만 그들에게는 군사행동을 중지할 의향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정화》의 간판밑에서 일방적인 침략책동에 발광적으로 매여달리고있다.
현 사태는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파괴자, 암적존재로서의 이스라엘의 범죄적정체를 국제사회에 다시한번 뚜렷이 각인시키고있다.
본사기자 은정철
[내걸자마자 깨여져나가는 《정화》의 간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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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2월 5일
[밸푸어선언 - 세계상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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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4일
세계상식
《밸푸어선언》
2024.11.14. 《로동신문》 6면
1917년 11월 2일 영국외무상 밸푸어는 당시 유태복고주의운동지도자 로스챠일드에게 편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악명높은 《밸푸어선언》이다.
밸푸어는 편지에서 영국정부가 팔레스티나땅에 유태인들의 《민족의 집》(유태민족국가를 의미함.)을 세우는데 동의하며 그 실현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밸푸어선언》은 당시 영국정부와 유태복고주의자들이 팔레스티나문제에서 서로 리용하고 《협조》한 산물이였다.
영국에 의거하여 팔레스티나땅에 발을 붙이려는 유태복고주의자들의 기도는 중동지역에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는 영국의 요구와 일치하였다.1882년 에짚트를 강점한 영국은 지중해동남부지역의 전략적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팔레스티나와 지중해의 아랍연안나라들을 저들의 지반으로 만들려고 하였다.그리하여 영국은 팔레스티나의 유태세력을 《벗》으로 보고 인디아로 통하는 극히 중요한 통로인 수에즈운하를 지중해동쪽해안의 완충지대로 간주하였다.
영국은 《밸푸어선언》을 리행하기 위하여 1922년에 요르단강을 계선으로 대요르단을 둘로 갈라 서쪽은 팔레스티나, 동쪽은 외요르단으로 하였다.《밸푸어선언》의 발표로 유태인들은 팔레스티나에 국가를 세우기 위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게 되였다.
한때 이스라엘외무상으로 있었던 아바 에반스는 《유태사》라는 책에서 만일 《밸푸어선언》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스라엘이 없었을것이라고 썼다.
본사기자
[밸푸어선언 - 세계상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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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4일
[유태복고주의 - 세계상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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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6일
세계상식
《유태복고주의》
2024.11.16. 《로동신문》 6면
유태복고주의는 유태인들이 이른바 《잃은 땅을 회복》한다는 구호밑에 유태국가를 다시 세우려는 반동적인 사상이다.
팔레스티나땅에 돌아가 유태국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사상은 이미 17세기초부터 나온바 있으나 정치적조류로서의 유태복고주의는 19세기말에 형성되였다고 할수 있다.
19세기중엽이래 유럽나라들에서의 자본주의발전과 더불어 유태인들속에서 대규모적인 근대기업을 창설하여 《유태민족중심》을 형성하려는 야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한편 유럽자본주의렬강들은 유태인들의 복고주의적감정을 부추겨 아랍인들과 유태인들사이의 반목과 불화를 조성함으로써 저들의 중동침략정책을 손쉽게 실현하려 하였다.
유태복고주의는 이것을 배경으로 대두하게 되였다.
1897년 3월 스위스의 바젤에서 열린 유태복고주의자들의 제1차대회에서는 《팔레스티나에 유태인들을 위하여 법적으로 보호되는 피난처를 창설》하는것을 유태복고주의의 공식목적으로 선포하였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세계유태복고주의조직이 조작되였다.
유태복고주의는 변형된 부르죠아민족주의와 사회배외주의 및 기타 반동사상을 포함하고있다.
그 기본교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유태인들은 《조상들의 땅》(팔레스티나와 그에 린접한 지역)에 집결하여 《순수 유태적이고 평등한 국가》를 세울 《력사적권리》를 가지고있다는것이다.
19세기말이후 유태복고주의자들은 영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티나에 대대적으로 기여들어 팔레스티나인들과의 끊임없는 충돌과 마찰을 일으켰으며 1948년 5월 미국의 부추김밑에 팔레스티나의 일부 지역에 이스라엘국가를 조작하였다.
유태복고주의는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국가사상으로 되였으며 그것은 전세계유태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이스라엘에로의 집결, 유태복고주의정신으로의 무장, 《대이스라엘국가》의 건설을 주되는 목적으로 하고있다.
유태복고주의를 일명 시온주의(시오니즘)라고도 한다.시온이란 꾸드스(이스라엘명 예루살렘)의 작은 산언덕이름이다.
유태복고주의가 《시온산에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내들고있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고있다.
본사기자
[유태복고주의 - 세계상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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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16일
[키부츠 - 세계상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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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21일
세계상식
《키부츠》
2024.11.21. 《로동신문》 6면
키부츠는 이스라엘이 강점한 아랍지역들에 건설한 유태인들의 반군사화된 정착촌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이 정착촌에 수십세대 또는 수백세대를 망라시켜 반군사화와 요새화가 실현된 집단농장, 집단촌으로 꾸려놓았다.여기에서는 모든 유태인들이 공동로동을 할뿐 아니라 어린이들까지도 집단적으로 키우게 되여있다.
정착촌의 거주자들은 반군사조직에 가입하여 매일과 같이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또한 이스라엘인모두가 항상 무기를 소지하고있으며 외출할 때에는 총을 휴대하고 다닌다고 한다.정착촌주위에는 철조망을 치고 이스라엘군병사들이 지키고있다.
이스라엘의 력사를 보면 20세기전반기에 키부츠운동이라는것이 있었다.
아랍인민들의 날로 강화되는 독립투쟁을 견제하려는 영국의 술책에 따라 1919년부터 1923년사이에 중동지역에서는 유태인들의 제3차 이민운동이 벌어졌다.이 운동을 키부츠운동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전쟁이후 강점한 아랍땅에서의 정착촌건설을 《유태인복지정책》의 기둥으로 내세웠으며 《유태인들을 이주시키면 이 땅도 이스라엘의것이 된다.》라는 강도적인 구호를 내걸고 정착촌건설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그리고 이 정착촌을 《키부츠》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정부는 강점지역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에 대하여 특별보조금을 주고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우대조치를 실시하여왔다.이를 통해 더 많은 유태인들을 정착촌에 끌어들이고있다.나할이라고 부르는 정착촌도 있다.이곳을 군인촌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착촌들은 말뿐이지 실지로는 해당 지역에 대한 강점의 영구화와 중동침략을 위한 이스라엘의 군사적거점들이다.
본사기자
[키부츠 - 세계상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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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3(2024)년 11월 21일
붙임)
지금 상황이
그 얼마나 엄중한지가
몸서리치게 느껴지지않습니까. 그렇다면,
스스로가 거짓 반공세뇌 우민화 공작에 걸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못하는 정신불구자 얼빠진 망탕머저리 바보가 되어있음이 명명백백하게 증명되는 것입니다.
조선전쟁(6.25)을 되돌아봅시다.
인민대중(민중)이,
적아(敵我)를 가려보지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정세를 직시.인식하지못하고,
멍하면,
전쟁참화는 현실로 됩니다.
우리 모두 얼차리고
적아(敵我)를 또렷이 직시.인식 합시다.
있는 그대로의 절박한 정세(현실)를 직시.인식 합시다.
우리 스스로와 사랑하는 후세대를 위하여 !
사람(人) 민족 조국을 위하여 !!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공보실장 담화
[연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에서 하신 기념연설》 김정은 주체113(2024)년 11월 21일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담화
[연설] 《조성된 정세와 공화국무력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들의 임무에 대하여》 조선인민군 제4차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공보문]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임대표부 공보문
[담화] 적대세력들의 가증되는 군사적위협은 우리 핵무력강화로선의 정당성을 완벽하게 립증할뿐이다 -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백서] 우리 국가에 대한 중대주권침해행위는 최악의 통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윤석열패당의 발악적흉책의 산물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적연구원 백서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성명] 적대세력들의 군사적위협을 억제하고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노력을 더욱 증대시켜나갈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성명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지도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신형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19》형시험발사 성공적으로 단행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대한민국발 무인기에 의한 엄중한 주권침해도발사건의 최종조사결과 발표
[담화] 미국은 조선반도정세를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떠민데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외정책실장 담화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김정규 로씨야담당 부상 최근 여론화되고있는 대로씨야파병설과 관련한 립장 발표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김선경 국제기구담당 부상 담화
[담화] 불법무도한 대조선제재책동에 가담한 나라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선희 외무상 담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전략미싸일기지들을 시찰하시였다
[발표] 대한민국이 감행한 반공화국중대주권침해도발의 진상이 밝혀졌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발표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안전성 대변인발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선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하시였다
[보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부국경 동,서부지역에서 대한민국과 련결된 도로와 철길 완전페쇄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담화] 무모한 도전객기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것이다 -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발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국경선부근의 포병련합부대들과 중요임무수행부대들에 사격준비태세를 갖출데 대한 지시를 하달한데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발표
[담화] 한국군부는 중대주권침해도발의 주범 또는 공범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것이다 -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중대성명] 주권사수,안전수호의 방아쇠는 주저없이 당겨질것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중대성명
붙임)
전쟁!
핵/생/화학 전쟁!!
살아남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핵/생/화학 전쟁!!
자나깨나
북침전쟁 기회를 노리며
늘상
미친듯이 벌려놓는
북침전쟁 연습과
북침전쟁 도발과
그에 따른 전쟁공포 속에서 살다보니,
전쟁!!
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있습니다.
철천지원수 미제침략자의 목표는
애초
북침전쟁 입니다.
전쟁!!
분단고착화 미군강점유지책략 무기장사... 따위는 허울이고 부수적인것이고 수단(방편) 입니다.
따라서,
감각이 무디어졌든말든 전쟁은 그냥 전쟁 입니다.
더구나
이 전쟁은
1차 2차 세계대전이나 조선전쟁(6.25)과는 다릅니다.
이 전쟁은
세계 판가리 전쟁 입니다.
총포탄은
핵/세균/독가스는
그 누구도
알아보지도 않고
피해가지도 않습니다
핵/생/화학 전쟁 앞에서
그 무엇이 중요하며, 그 무엇이 쓸모있습니까.
지금
당장
전쟁이 터져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생사존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멍하니 앉아서 무리죽임을 당하느냐
아니면
모두가 하나같이 떨쳐나서 전쟁미치광이놈들을 때려잡고 전쟁을 막느냐.
쥐구멍인지 하수도구멍인지 바퀴벌레처럼 모여앉아서
종이장 들고 사진찍고 본질없는 헛소리나 나불거리는
유치원 아이 놀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얼 차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얼 차립시다.
지금은
행동으로 떨쳐나서야할 때 입니다.
너나 할것없이
한사람같이 떨쳐나섭시다.
전쟁미치광이놈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잡읍시다 !!!
우리 스스로와 사랑하는 후세대를 위하여 !
사람(人) 민족 조국을 위하여 !!
붙임)
오늘날,
국제정세는 반미.반제.자주(다극화 : 자주에 바탕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질서 수립)이고, 이러한 전지구적 흐름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멈춰세울수도 없고 되돌릴수도 없습니다. 나날이 더 빠르게 갈수록 더 강력하게 추동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제정세를 주도하는 국가는 조선(이북)과 로씨야(러시아) 입니다.
정의로운 반제자주에 있어서,
조선(이북)이 세계 반제자주의 중심축이자 동방의 중심축이고, 유럽의 중심축이 로씨야 입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국제정세를 읽으려면, 응당 조선(이북)과 로씨야의 소식(정부발표문, 신문, 방송...)을 보고 듣고 읽어야 합니다.
모두가
보고 듣고 겪고있는 바와같이,
인류의 적(敵)
서방유대양키악마는
결코 벗어날수없는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진채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마지막 발악을 하고있습니다. 전쟁에 미쳐날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애초 결정되어 있습니다. 서방유대양키악마 멸절 입니다. 물론, 그 괴뢰주구 미제깡패와 떨거지놈들도 멸절입니다.
거침없이 무너지고있는 서방유대양키악마와 그 꼭두각시 졸개들이 내돌리고 불어대는 거짓세뇌선전을 보고 듣고 읽으면, 그로써,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못하는 정신불구자 멍텅구리 바보로 만드는 것입니다.
※ 시장단신은 시장 저변의 흐름과 관련이 있는 내용 가운데서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